영화 ‘너와 나’가 비극적 참사를 애도하는 방식

입력 2023-11-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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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학창 시절, 친구는 여러 의미에서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까지 느꼈다면,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세미(박혜수)에게 하은(김시은)이 그렇다. 하은을 바라보는 세미의 눈동자에는 사랑이 가득 담겼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세미는 하은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그렇다면 하은은 세미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두 소녀는 서로에게 무슨 존재일까? 영화 ‘너와 나’의 표면적 줄거리다.

세미가 고백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 점심시간,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자던 세미는 하은이 죽어 있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깬 세미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친구들의 모습을 잠깐 바라본다. 이어 세미는 학교 화단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이 새를 정성스럽게 묻어준다. 죽은 친구와 죽은 새.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 세미는 조퇴한 뒤 자전거 사고로 입원한 하은에게로 향한다.

▲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수학여행과 죽음의 이미지. 예민한 관객들은 이 영화가 세월호의 자장 안에 놓여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두 소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성장영화처럼 보였지만, 사실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던 건 세월호 참사였다. 다만 영화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이 아니라 그 전날이다. 영화는 세월호에 타기 전,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스크린에 천천히 쌓아 올린다.

성장영화의 외피를 두른 ‘너와 나’는 세월호를 다루되 언급하지 않는다. 세월호와 팽목항의 이미지는 물론 단어조차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비극적 사건의 시공간을 모두 제거하면서도 그것을 전면화한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설정은 희생자들의 ‘고통’이 아닌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고, 얼마나 불쌍한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는지 일깨운다.

▲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세미와 하은의 한나절을 동행하는 카메라의 시선에는 떨어질 듯한 물컵, 주인 잃은 강아지, 안산역, 상복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된다.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는 하은(남겨진 자)과 그게 못내 아쉬운 세미(떠난 자)의 관계성 등 영화에는 세월호와 연관해서 보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상징들이 많다. 이를 통해 영화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에도 언제나 비(非)일상적 사건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관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인물이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영화적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미가 장난치듯 하은에게 “진짜 갈게”라고 말하며 프레임 밖(외화면)으로 나갔다가 다시 프레임 안(내화면)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그만큼 삶과 죽음의 경계가 찰나적임을 형상화한다. 세월호에 탔던 ‘그들’이 다시 생으로 돌아오지 못함을 아는 관객들에게 그 장면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너와 나’의 영어 제목은 ‘The Dream Songs’이다.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노래처럼, 희생자들의 존재감 역시 노래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계속 흥얼거릴 수 있다. 그것이 남겨진 자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의 방식이다. 그들도 ‘그 전날’에는 세월호 바깥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꿈에 그리던 노래들을, 사람들을 영화는 간절히 외치고 있다.

▲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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