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사건, 재심 재판부 판결문 살펴보니

입력 2023-11-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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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스틸컷. 배우 유준상(왼쪽)은 당시 무리한 수사를 지휘한 경찰 역을 맡았다. (CJ ENM)
이달 초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이 관객의 잔잔한 반응을 끌어내는 가운데 이 작품의 실화인 ‘삼례나라슈퍼 사건’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1999년 사건 발생 이후 17년 만인 2016년, 피고인들에게 비로소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던 재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강도 3인조’ 지목된 지적장애 청년들
이듬해 진범 자백했지만 수사기관 묵살

1999년 2월, 전북 완주 삼례에 위치한 나라슈퍼에 3인조가 강도가 침입한다. 이들은 주인 부부의 현금과 패물 등을 빼앗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할머니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질식해 죽게 한다.

당시 완주경찰서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19세, 20세의 동네 토박이 청년 3명을 지목해 범인으로 체포했다. 이후 폭행과 협박을 가해 인위적으로 범행 증언을 확보한 뒤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은 수사 내용에 따라 이들을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한다. 법원은 피고 A에게 징역 6년, 피고 B, C에게는 소년법에 따라 장기 4년, 단기 3년을 선고한다.

상황을 뒤집을 만한 반전이 이듬해인 2000년 찾아든다. 자기 대신 붙잡힌 청년들의 소식을 접한 부산 지역 진범이 ‘내가 한 일’이라며 자백해온 것이다. 부산지검은 해당 내사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이송한다.

그러나 전주지검은 사건을 기존 검사에게 다시 배당하는 악수를 두고, 해당 검사는 ‘신빙성이 없다’며 혐의없음 결정으로 내사 종결한다. 이 검사 역은 '소년들'에서 배우 조진웅이 맡아 연기했다.

사건 발생 이후 17년 만인 2016년, 전주지법은 "진범이라고 자백하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참고인들의 진술은 이 사건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발견된 새로운 증거”라면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 “피고인들의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빼앗은 현금 6만 원-> 43만 원… 증언 오락가락
“범인은 경상도 말씨”라는데 피고인들 익산 토박이

▲'소년들' 포스터. "누가 이들을 살인자로 만들었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CJ ENM)

전주지법이 공개한 재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애초부터 범행 묘사에 일관성이 없는 점을 무죄 판단 근거로 봤다.

피해자들에게 강탈한 현금이 5~6만 원이라고 진술했다가 이후에는 25만 원, 45만 원 등으로 바뀐 점, 패물을 훔친 뒤 집 근처 하천에 버렸다고 했다가 다시 패물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설명한 점 등 범행의 주요 진술이 재차 번복됐다는 것이다.

사건 피해자가 “범인 중 한 명은 경상도 말씨를 쓴다"고 증언한 점도 상황과 모순된다고 봤다. 무고한 옥살이를 한 피고인 3인 모두 익산 토박이라 경상도 말씨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은 “담을 넘어들어갔다”고 진술했지만 피해자들은 “당시 대문이 고장 나 열려 있었다”고 말한 점, 피고인들은 결론적으로 “현금 43만 원 정도를 빼앗았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피해자들은 정작 “현금 10만 원 정도를 강취당했다”고 증언한 점 등도 이치에 맞지 않는 정황으로 봤다.

사망한 할머니에 대해서 피고인들은 “안면과 좌측 뺨을 주먹으로 2~3회 가격했다”고 했지만 재판부가 시신 기록을 살펴본 결과 “입 주위가 부은 것 외에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것으로 보이는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천에 버렸다는 패물을 경찰이 수색했지만 끝까지 찾을 수 없었던 점, 피고인 중 한 명이 패물 은반지를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주었다고 증언했으나 회수해 온 해당 은반지를 본 피해자들이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한 점도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사건 발생 17년 만인 2016년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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