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에 계산기 두드리는 나라들…전쟁에 드러난 ‘민낯’ [이슈크래커]

입력 2023-10-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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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마운트 헤르즐 묘지에서 열린 이스라엘 군인 실로 라우흐베르거의 장례식에 조문객들이 참석하고 있다.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쟁 대신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1년 넘게 전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에 대해선 ‘휴전’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건데요. 아이러니한 상황에 전 세계의 눈길이 쏠렸습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는 나라는 러시아뿐만이 아닙니다. 그간 이스라엘과 관계 강화를 추진해왔던 중국은 돌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는데요.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는 오늘(18일) 정상회담을 통해 중동 평화를 위한 해법 논의에 나선다고 합니다.

국제 정치질서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혹은 이익을 극대화하긴 위한 전략적 태세전환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러시아와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도, 이번 전쟁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러시아 “중재자 역할하겠다”…뜻밖의 훈수(?)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총리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오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를 섬멸할 때까지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총리는 이스라엘이 잔인무도한 살인마들에게 공격을 당한 뒤 단호히 전쟁에 나섰으며, 하마스의 군사·통치력을 궤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죠.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 측에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목을 끝내고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달성하기 위한 러시아의 협력 의지를 표시했다”고 크렘린궁이 전했죠. 전날에도 푸틴 대통령은 아랍권 정상 5명과 연쇄 전화 통화를 통해 “전쟁을 멈추고 휴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가 표면상 중재에 나선 건 미국의 중동 장악력에 빈틈이 포착된 틈을 타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 깔린 건데요. 미국 군사 지원이 이스라엘로 분산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이득을 노릴 수 있습니다. 중동으로 전쟁이 확산한다면 에너지 위기가 심화해 대러 체제가 약해질 수 있고, 중국에 맞서 인도와 중동, 유럽을 잇겠다는 미국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죠.

▲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이스라엘, 선 넘었다”…돌연 태세 전환한 이유는?

그렇다면 중국은 왜 나선 것일까요? 사실 중국은 이번 전쟁 직전까지도 이스라엘과 관계 강화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미국 견제에 맞서 중동에서의 세를 불리기 위함이었는데요. 6월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국빈 방문을 요청해 이달 말 베이징에서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었죠.

동시에 팔레스타인과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6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팔레스타인 지원 확대를 약속하며 양국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도 중국은 사실상 ‘중립’을 선언해왔습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사태 초반인 9일 “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친구”라면서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공동 안보와 공동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에 대한 더 강한 비판을 기대했었다”며 아쉬워했죠.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중국은 노선을 틀었습니다. 1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습니다.

왕 부장은 “중국은 민간인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고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의 행위는 이미 자위(自衛)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강조했죠. 이튿날 이란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선 중국이 팔레스타인 민족 권리 수호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자,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지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습니다. 중국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입니다. 중국과 아랍 국가들이 한편에 서는 이익을 위해선 친(親)팔레스타인 노선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이번 전쟁으로 인한 아랍 국가들의 혼란은 미국의 ‘중동 패권’을 뒤흔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12일 미국을 대체할 ‘파트너’를 찾는 중동 국가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이번 분쟁을 기회로 팔레스타인 등 아랍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더욱 다짐으로써 역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미국 ‘균형 외교’ 난항…바이든, 대선 앞두고 변곡점 맞나

‘중동 평화 중재자’를 자처해 왔던 미국은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재확인할 정도입니다. 여기엔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하마스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도 있는데요. 이란과 시리아,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의 개입 가능성을 압박하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죠.

바이든 대통령은 17일 오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참모들과 함께 전용기(에어포스원)편으로 워싱턴DC 인근의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창 전쟁 중인 지역을 방문하는 건 2월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짼데요.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방문해 중동 지도자들을 만나 하마스를 고립시키고 이스라엘의 반격에 대한 명분을 설파하는 ‘대리 외교전’을 펼 전망이었죠.

그러나 이날 가자지구 병원이 폭발하면서 계획은 뒤틀렸습니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이어 요르단 암만을 방문해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나려 했는데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한 병원을 공습해 치소 500명이 숨졌다는 BBC와 알자지라 방송 등 보도가 나온 뒤, 중동 지도자들이 먼저 회동 취소 방침을 밝힌 겁니다. 이 발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로 출발하는 전용기를 타려고 백악관을 나선 직후 나왔죠.

이스라엘군은 책임을 부인하며 병원 폭발이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간 가자지구 완전 봉쇄 등 민간인 피해를 외면하는 행보를 보인 만큼, 설득력을 얻진 못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진실게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의 맹방인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표명과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 자제 요구, 중동의 대표적 반미국가인 이란의 개입 억제 등 상충할 수 있는 목표 사이에서 고심해야 합니다.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감수하고 나선 순방길이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 내 여론이 악화하고 있어 지지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죠.

이후 전쟁의 향방은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미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외교 실패”라고 공세를 펼치고 있죠.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로부터 이번 전쟁과 관련한 전략과 구상을 청취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도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민간인의 희생을 초래하는 ’과도한 보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이스라엘 방문은 향후 중동 정세 및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까지 결정할 변곡점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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