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암투병 끝 별세

입력 2023-10-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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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연합뉴스)

'단색화 대가'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으로 '단색화 거장'으로 불렸다.

1967년 시작한 묘법 작업은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긋는 전기 묘법시대(1967∼1989)을 거쳐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뒤 도구를 이용해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후기 묘법시대, 2000년대 들어 자연의 색을 작품에 끌어들인 유채색 작업까지 변화를 거듭해 왔다.

박 화백은 이러한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양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이되 이를 동양의 정신과 섞어 우리만의 새로운 현대미술을 만들어냈다.

그는 2010년 회고전 간담회에서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라며 "그림이란 작가의 생각을 토해내는 마당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마당이며 묘법은 내가 나를 비우기 위해 수없이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은 국내외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고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1962∼1997년 모교인 홍익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홍익대 미대 학장(1986∼1990)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등을 지냈다. 후진 양성을 위한 재원을 기탁해 2019년 기지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년)과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 금관문화훈장(2021) 등을 받았고 제6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박 화백은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작업활동을 이어왔다. 올해 8월 부산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했다.

앞서 그는 올해 2월 페이스북에 폐암 3기 진단 사실을 밝히며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밝혔다. 고령에도 작업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그는 "요즘 많이 걸으며 운동하는 것은 더 오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그리기 위한 것"이라며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고 말했다.

현재 고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제주도에 건립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명숙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된다. 조문은 이날 오후 5시부터 받는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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