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건 다 판다…줄잇는 지분·부동산 매각 [“파티는 끝났다”[허리띠 죄는 기업들]②

입력 2023-10-03 12:00수정 2023-10-0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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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 부채규모 및 부실비율
롯데그룹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3월을 시작으로 지난 6월까지 총 9개의 해외법인을 정리했다. 롯데케미칼은 올 초 파키스탄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설비를 정리하는 한편, 최근에는 중국 화학 기업과의 합작공장인 롯데삼강케미칼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과도한 재무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내면서 갈수록 적자가 쌓여가는 모습이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부동산 자산을 매물로 내놨다. 4000억~45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부동산 유동화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은 유상증자를 통해 2조 원을 조달한다. 2조 원의 자금을 확보하면 부채비율(2023년 6월 말기준)이 485%(연결기준)에서 261%로 개선될 것으로 회사 쪽은 예측했다. 하지만 한화오션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주주가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경제 회복이 예상을 벗어나자 현금 확보 전쟁에 나섰다. 긴축 강도는 약화했지만, 시중 금리가 오르고,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보유 주식·부동산·자회사를 포함해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탄탄한 재무구조로 유명했던 재계 2위, 5위인 SK, 롯데그룹이 전방위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데 대해 놀라는 분위기다. 재계 1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위기는 없다고) 정부는 큰소리 치지만,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불안이 팽배하다. 소리 없이 찾아올지 모를 ‘자금 혹한기’에 대비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알짜 ASML 지분 매각 = 국내 기업 가운데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기업인 재계 1위 삼성전자도 올해 자금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반기보고서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97조999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 114조7835억 원에서 17조6836억 원 감소한 규모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작년 말 49조6807억 원에서 79억9198만 원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단기금융상품은 작년 말 65조1029억 원에서 17조1801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5% 급감하면서 단기금융상품 등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알짜’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지분도 7년 만에 일부(354만7715주) 매각하며 적극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섰다. 지분율은 1.6%(1분기 기준)에서 0.7%로 낮아졌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약 3조 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ASML 외에도 2분기에 중국의 전기차 업체 비야디 주식 238만 주(0.1%), 국내 종합 장비 회사 에스에프에이(SFA) 154만 4000주도 각각 처분했다. 이를 통해 1500억 원의 현금을 창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CJ그룹은 재무개선을 목표로 CJ ENM이 지난해 약 1조 원을 투입해 인수한 미국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콘텐츠 제작사)인 ‘피프스시즌’ 지분 매각과 신주 발행 등 다각도로 자금 조달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J ENM은 5년 전 하이브와 합작해 설립했던 기획사 빌리프랩 지분 51.5%(매각가 1470억 원)를 하이브에 모두 매각하기도 했다. CJ ENM은 올해 상반기 적자전환하는 등 재무 상태가 악화했다.

SK는 올해 2월 약 880억 원 수준의 미국 차량 공유업체 투로 지분을 매각했고, 지난달 말에는 1462억 원 규모 쏘카 지분 17.9% 전량을 롯데렌탈에 매각했다. 1조 원 규모의 투자 차익이 예상되는 세계 1위 동박 기업 론디안왓슨뉴에너지테크의 지분 약 30%도 매각 추진 중이다. 엔씨소프트도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 보유 지분 66.67%를 5월 기존 주주에게 모두 매각했다. 엔씨소프트는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를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 디어유에 양도한데 이어 클렙도 처분하며 게임 사업 본연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유동화 나선 롯데쇼핑·이마트 = 자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 매각에 나선 기업들도 줄 잇고 있다.

한진그룹은 자금 확보를 위해 미국 하와이에 있는 와이키키리조트호텔을 부동산 투자회사인 AHI-CLG LLC에 1465억 원에 팔았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도 와이키키리조트호텔 매각에 앞서 지난달 4일 서소문사옥 건물과 토지를 대한항공에 2600억 원에 매각했다. 한진칼은 매각 사유로 “유동자금 확보”라고 밝혔다. 한진칼의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32%, 현금성자산은 2313억 원이다. 향후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 1040억 원을 정산하고 나면 보유 현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 한진칼은 10월과 11월 만기인 회사채 각각 230억 원과 280억 원, 내년 3월 만기인 공모 회사채 530억 원을 상환해야 한다.

현대차·기아의 중국 내 실적 저조가 이어지자 베이징현대는 충칭 공장의 토지 사용권, 장비, 기타 시설 등을 36억8435만 위안(약 6757억 원)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제철도 베이징법인(현대스틸 베이징프로세스)과 충칭법인(현대스틸 충칭) 매각 절차에 나섰다. 두 중국 법인의 사업보고서상 자산 규모는 약 825억 원이다.

이마트는 서울 강동구 고덕역에 있는 명일점을 매각하기로 하고, 캡스톤자산운용과 매각 관련 협상을 진행중이다. 매각 금액은 4000억 원 후반대가 거론된다. 또 이마트는 신세계에 1300억 원을 받고 SSG 푸드마켓 청담점과 도곡점도 매각하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충북 진천군에 있는 공장 부지와 부동산을 동원F&B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매각 규모는 4만6159㎡(약 1만4000여 평)이며, 처분 대금은 241억 원이다. 회사 측은 “재무건전성 강화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 매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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