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난동에 살인 예고글까지…전 국민 트라우마 ‘빨간불’ [이슈크래커]

입력 2023-08-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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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 모(23) 씨가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길거리 다니기 무서워요” “생활 소음에도 깜짝깜짝 놀라요”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면서 온 국민의 불안이 커졌습니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일상이 요동치는 불안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에 서현역 사건까지...흔들린 일상

3일 오후 5시 59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인도로 경차 한 대가 돌진했습니다. 차량으로 보행자들을 고의로 들이받은 피의자 최 모(23) 씨는 차에서 내린 후 한 백화점으로 들어가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는데요. 곧바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흉기 난동으로 시민 9명이 다쳤습니다. 이 중 8명이 중상입니다. 또 인도로 차를 몰고 돌진하면서 시민들을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죠.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최 씨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요.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특정 집단이 자신을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자신의 사생활을 전부 보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는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피의자 조선(33)은 “다중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흉기를 이용해 다수의 피해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실 등에 비춰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이 인정된다”는 경찰의 판단 아래 신상이 공개됐는데요.

조선은 이날 오후 2시 7분께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 초입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30대 남성 3명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 등)로 지난달 23일 구속됐습니다. 범행 전날 오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고 컴퓨터도 부쉈으며, 범행 10분 전엔 흉기를 훔친 뒤 택시를 타고 신림역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조선은 경찰에 “범행을 미리 계획했고 발각될까 봐 두려워 스마트폰을 초기화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온라인상에서는 특정 지역을 언급하면서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살인 예고 글이 수차례 게재되면서 시민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전날 서현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불특정 대상을 겨냥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고 현장, SNS 통해 급속 전파…집단 트라우마 우려도

신림역과 서현역 흉기 난동은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와 시간대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습니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 역시 많았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현장 사진 및 영상도 다수 퍼졌습니다.

특히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여과 없이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조선의 범행 장면은 ‘신림역 범인 얼굴’, ‘신림역 칼부림 풀 영상’ 등 제목으로 온라인상에 확산했는데요. 영상에는 조선이 여러 번 흉기를 휘두르다 달아나거나 옷과 얼굴 등에 피를 묻힌 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중 현재 신고 처리된 한 영상은 조회 수가 25만 회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은 인원이 시청했습니다.

문제는 일부 플랫폼에서 영상이 자동 재생되는 탓에 본인 의지와 상관 없이 영상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목격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누리꾼도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각에서는 전국민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PTSD란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을 말하죠.

지난해 10월 31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PTSD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던 이들 외에도 SNS, 언론 보도를 통해 현장 사진과 영상을 접한 수많은 시민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경기 성남시 분당구갑)은 3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현장을 찾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신속한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을 목격한 시민 중 PTSD 우려가 있는 사람들이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분당보건소에 조치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6일 오후 서울 지하철 9호선 내에서 발생한 승객 대피 소동 당시 모습이 SNS 등을 통해 확산했다. (출처=X(옛 트위터) 캡처)
흉기 난동 이후 온갖 해프닝…시민 안전 우려 커져

실제로 최근 며칠간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지 못하겠다”, “길거리를 다닐 때도 주위를 살펴보며 걷게 된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여도 불안하다”고 우려하는 이들의 반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 같은 불안감은 각종 해프닝으로 나타났습니다.

6일 저녁엔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다친 것 같다”,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등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신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됐는데요. 신논현역에 열차가 정차하자 승객들이 급히 내리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찰과상, 타박상 같은 부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열차 바닥에 남은 신발과 소지품 등이 당시 승객들의 긴박했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승객들이 갑작스럽게 동요한 경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최근 잇따른 흉기 난동으로 인한 공포가 무관치는 않아 보입니다. 열차 안에서 한 가수의 라이브 방송을 보던 일부 팬들이 일제히 고성을 질렀고, 이를 비명으로 착각한 다른 사람들이 신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역 안에 흉기 난동범이 있다”, “가스 냄새가 난다” 등 신고도 접수됐는데,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5일에는 흉기 난동 오인 신고로 10대 중학생이 경찰에 진압되는 과정에서 다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의정부경찰서는 이날 밤 10시께 “의정부시 금오동 부용천에서 검정 후드티 입은 남자가 칼을 들고 뛰어다닌다”는 112신고를 접수하고 즉각 인근 지구대 인력과 형사 당직 등 전 직원을 동원해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토대로 해당 남성 추적에 나섰는데요. 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들은 하천에서 검정 후드티를 입고 이어폰을 착용한 채 달리는 10대 중학생 A 군을 특정해 붙잡았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A 군은 형사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하자 겁이 나서 달아났고, 형사들도 A 군이 도주한다고 생각해 추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 군이 스스로 넘어져 다쳤고, 또 진압 과정에서 머리, 등, 팔, 다리에 추가로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붙잡고 보니 A 군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진압 과정을 목격한 일부 시민은 ‘의정부시 금오동 흉기 난동범’이라는 사진과 영상을 SNS상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A 군 측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있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죠.

이 밖에도 경남 진주에서 공사장 인부가 로프 절단용 칼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신고하거나, 가스 누출 신고를 흉기 난동 사건으로 오인하는 등 소동이 잇따랐는데요.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고 온라인 상에는 칼부림 예고 글까지 속출하면서 시민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가석방 없는 무기형·사법입원제 검토…“예방책도 중요” 의견도

정부는 대응책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4일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최근 흉기 난동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로 인해 ‘사형 집행’ 등 사형제 옹호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 따른 방침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괴물의 경우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취지에 공감을 표한 바 있죠.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실제 사형 집행이 한 차례도 이뤄진 바 없습니다. 사실상 무기징역 선고가 최고형으로 여겨지죠. 그러나 가석방 자격 요건 탓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현행법상(형법 제72조 1항) 무기징역을 선고받더라도 ‘행상이 양호하여 뉘우침이 뚜렷한 때’에는 가석방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매년 10명 이상의 무기징역 수형자가 풀려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법원이 당사자·보호자 동의 없이 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는데요. 이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정신질환자를 법관의 결정으로 입원시키는 제도입니다.

현행 제도도 정신의학과 전문의 결정에 따라 강제 입원이 가능하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해 위기 상황에서 적절하게 가동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에 법원에도 강제 입원 심사권을 부여해 조치의 정당성과 신속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죠.

다만 가족 간 갈등에 악용되는 등 인권 침해 우려가 있고, 보건복지부 소관인 정신질환 관련 업무를 법원이 수행하는 것이 권력분립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에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미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범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예방 조치 역시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같은 엄정 대응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묻지마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건데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에선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는 등 병원 전 단계와 이송에 대한 적극적 관리가 미비한 실정”이라며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찰이나 지자체 차원에서 정신질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스템 등부터 갖춰져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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