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대화’ 시대…지구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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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그리스 남동부 로도스 섬에서 시민이 산불을 피해 이동하고 있다. 로도스 섬 산불은 18일 시작해 섬 중부와 남부 일대를 휩쓸며 최근 그리스를 덮친 산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AP/뉴시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는 끝났다.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기상기구(WMO)의 분석을 토대로 내놓은 경고입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는 두려운 상황이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밝혔는데요. 실제로 지구 각지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북미, 유럽은 이상고온으로 들끓고 있죠. 미국 일부 도시 기온은 50도를 넘나들었고, 유럽과 아프리카 등 지중해 지역에서는 장기간 폭염에 산불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WMO는 이날 “올해 7월의 첫 3주간은 지구가 가장 더웠던 3주로 확인됐다”며 “(마지막 주까지 고려할 때) 7월 전체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WMO는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이런 분석을 내놨는데요. 이에 따르면 이달 6일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은 섭씨 17.08도로, 역대 일일 평균 지표면 기온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6년 8월 13일의 16.8도였죠.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 산하 국립환경예측센터의 비공식 기록으로는 7월 4일과 5일 지구의 평균기온은 17.18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달 1∼23일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은 16.95도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기존 월간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 최고치인 16.63도(2019년 7월)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로, WMO는 이 같은 추세에 비춰 올해 7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한 겁니다.

문제는 현 상황이 끝이 아니라는 건데요. WMO는 올해 7월보다 더 뜨거운 날씨가 5년 안에 찾아올 확률이 98%라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경고한 대로 기후변화는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죠.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폭염이 일상이 되는 등 심화하는 이상기후는 경제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사구아로 선인장이 더위로 말라 죽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선 폭염으로 매년 600여 명 사망, 유럽은 산불 속출

미국은 한 달 넘게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서부 지역을 덮은 열돔이 동북부로 확대되면서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의 기온도 38도 안팎으로 치솟았는데요. 애리조나주에선 최고 기온이 48도를 기록했고, 43도 이상의 무더위가 26일 연속으로 관측되면서 지역의 명물인 선인장까지 말라 죽고 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50도를 훌쩍 넘기며 110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는데요. 더위를 식힐 물가를 찾던 야생 곰이 가정집 수영장에 침입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고 하죠. 플로리다주에선 바닷물 온도가 목욕탕 온탕 온도에 버금가는 38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기상청(NSW)에 따르면 미국 인구 절반이 넘는 1억7000만 명가량이 ‘열 주의보’나 ‘폭염 경보’ 영향권에 들어 있습니다. 전력 수요도 급증해 13개 주에 에너지 비상경보가 내려졌는데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이상 고온에 대한 백악관 대책 회의 이후 대국민 연설에서 “기후 위기를 부인해 온 사람들조차 극심한 더위가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며 “미국에서만 폭염 사망자가 매년 600명 이상 발생하고 있고, 이는 기후로 인한 사망 원인 중 1위”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누구도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방정부 차원의 폭염 경보 조치와 함께 노동부 차원의 새로운 규칙 제정을 주문했습니다. 날씨 예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자금, 서부 전역에 깨끗한 식수를 보장하기 위한 보조금을 지원하며, 도심과 거주지에 나무를 심는 작업에 10억 달러(한화 약 1조2700억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죠.

유럽도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엔 15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닥쳤고, 건조한 날씨까지 더해진 탓에 산불이 급증해 13일부터 60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네아 안치알로스에선 산불이 공군 기지까지 번지면서 탄약 창고에 폭발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지중해 연안 국가 대부분이 유사한 이상기후를 겪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엔 폭우와 대형 우박이 내렸고, 남부엔 폭염과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아시아도 폭우와 폭염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40도가 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일본 오사카의 낮 최고기온도 39.8도까지 오르며 위험 수위에 이르렀죠. WMO는 최근 30년간(1991∼2022년) 아시아의 온난화 속도가 그 직전 30년(1961∼1990년)의 2배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의 온난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문에 설치된 성화 열기로 시민들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뉴시스)
이상기후, 경제성장률에도 영향…기업 생산성 악화·물가 상승 압박 우려

이상기후는 국내총생산(GDP) 손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관광산업에 빨간불이 켜질뿐더러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공급 차질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폭염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고온으로 인해 강철이 더 쉽게 휘고 공장 기계가 더 빠르게 마모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열사병을 방지하기 위해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루에도 수차례 변하는 기상환경은 공사 지연을 부르고, 이는 위약금 등 추가 비용으로 이어집니다. 지출하는 급여 비용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CNN은 23일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분석을 인용해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록적 폭염이 지속될 때 전 세계 GDP가 2100년까지 최대 17.6%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폭염으로 인한 과도한 전력 소비, 사망률 증가, 노동 시간 저하 등이 맞물리면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 건데요.

크리스 파라키스 무디스 애널리틱스 경제연구 책임자는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불러오는 경제적 비용을 보여준다”면서 “폭염은 냉각 비용을 높이고 지역 전력망을 압박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의 연속성에도 지장을 초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GDP 감소가 당장 눈앞에 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조슈아 지빈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경제학 교수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는 기후는 산업계와 경제 성장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은 아니더라도 분기별 GDP가 소폭 하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18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인근 이노이에서 산불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뉴시스)
여름 지나도 지구는 끓는다…전 세계 대응책 마련 절실

올여름 전 세계는 이례적인 폭염뿐 아니라 가뭄, 폭우, 홍수와 빈번한 산불, 골프공 크기의 우박까지 쏟아지는 등 온갖 이상기후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면 이상 고온이 조금 가라앉지 않겠냐는 기대도 나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습니다. WMO에 따르면 현재 지구가 이렇게 덥지만, 엘니뇨는 본격적으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최근 시작된 엘니뇨는 아직 날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서 “내년이 올해보다 더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죠.

게다가 해수면 온도가 무려 2도 넘게 올라가는 ‘슈퍼 엘니뇨’가 예고된 상황입니다. 안 그래도 역대 최고로 뜨거운 지구인데, 여기서 더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지구는 1982년, 1997년, 2015년 등 총 3차례의 슈퍼 엘니뇨를 겪었는데요. 이때마다 기상이변은 물론이고 전염병까지 돌면서 막대한 재산·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2015년 슈퍼 엘니뇨 발생 이후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에선 페스트, 한타바이러스, 탄자니아에선 콜레라,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뎅기열이 확산한 바 있죠. 당시 전 세계적으로 최소 6000만 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2년 엘니뇨는 4조1000억 달러, 1997 엘니뇨는 5조700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줬습니다. 또 엘니뇨에 의한 경제적 손실은 2029년까지 최대 3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국제금융센터 역시 ‘2023년 하반기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연말로 갈수록 열대 태평양에서 엘니뇨 현상이 강해질 것이라면서 “엘니뇨는 유전·석유 밀집지역에서의 열대성 폭풍·산불로 석유 공급 차질을 초래하고 이상 기온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켜 원자재발 인플레이션 압력을 재차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미 경험했듯,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은 경제와 사회를 마비시킵니다. 슈퍼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가 결합할 경우 우리가 경험한 것 이상의 피해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요. 이는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까지 부르면서 생존을 직접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극한 폭염·호우 등 기상이변을 이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기후 대응을 전 세계적인 의무로 인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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