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리니언시, 담합사건 넘어 형사범죄까지 확대되나[스페셜리포트]

입력 2023-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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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 사태’ 이후 불공정거래사범에 리니언시 적용 추진
불법 주도한 업체에 ‘면죄부’…리니언시 악용 논란 여전
“기업에 불필요한 피해 주는 등 부작용 개선안 마련해야”

▲양석조 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사건을 적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범죄 억제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어 향후 다른 형사사건에도 도입을 앞두고 있다. 1997년 리니언시 첫 시행 이후 25년이 지나 시장에 안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제도적인 한계점과 부작용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니언시 제도를 확대하기 전에 문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과 금융당국은 최근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를 계기로 시세조종(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사범에 리니언시 제도 적용 방안을 제시했다. 자진신고 시 형을 감경·면제해주면서 은밀하게 이뤄진 자본시장 범죄를 조기에 적발한다는 취지다.

마침 국회 정무위는 증권 범죄에 대한 리니언시 등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미공개정보 이용과 시세조정, 부정거래 등을 자진신고하거나 수사 또는 재판에서 증언을 해 범죄 규명에 기여하는 경우 형벌을 감경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사건에도 리니언시가 적용된다. 기존 공정거래 담합 사건에서 효과가 검증된 리니언시 제도가 다른 영역까지 확대 적용되는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리니언시가 도입될 때도 논란이 많았다. 그럼에도 담합이 그만큼 심각하고, 리니언시가 없으면 적발하기 어렵고, 외국에도 일반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시행된 것”이라며 “주가조작 사건에도 3가지 요소가 충족하는지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리니언시는 판단되지 않는 영역에서 담합이 있을 때 살펴보는 것인데, 다른 문제까지 적용하면 플리바게닝(유죄 협상제도)으로 확대돼 리니언시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지금 리니언시도 운영이 명확하지 않고 부작용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시스)

리니언시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불법을 주도한 업체에 ‘면죄부’를 주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었다. 특히 갑이 담합행위를 주도하다가 리니언시 제도로 을이 더 큰 처벌을 받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리니언시 악용 문제’ 역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험 입찰 담합’ 사건에 들러리로 참여한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메리츠화재, 공기업인스컨설팅 등 4개사를 기소했다. 하지만 담합을 주도하고 큰 수익을 거둔 KB손해보험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KB손해보험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리니언시를 접수한 기업이라고 보고 있다. 리니언시 공개 금지 조항에 따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먼저 담합에 나섰던 KB손해보험이 처벌을 면하면서 ‘리니언시 제도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유한킴벌리는 자사 23개 대리점과 함께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마스크, 종이타월 등 135억 원대 입찰을 담합해오다 2018년 공정위에 적발됐다. 담합을 주도한 유한킴벌리는 리니언시로 면죄부를 받았지만, 정작 대리점들은 과징금 폭탄을 맞으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공리적인 관점보다는 실효성 있게 수사를 하다 보니 죄를 짓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포기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정의 관념에 예외를 두는 제도이기 때문에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경우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리니언시 대상에서 제외하고 혜택도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 연방법무부(DOJ)의 리니언시 프로그램 지침은 ‘리니언시 신청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에게 담합을 강요해 참여시키거나 담합을 주도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한다.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해 이득만 챙기는 기업을 차단하는 식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니언시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인 건 사실이지만, 리니언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담합을 형성하지 않도록 하는 게 주 목적인데, 담합 적발 자체만 신경쓰다보니 리니언시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연구와 제도개선이 덜 이뤄진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리니언시 자체를 회의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기업이 불필요한 피해를 받거나 검찰과 공정위가 경쟁적으로 수사해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 두 기관은 디테일한 부분을 계속 조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에는 지난달 23일부터 공정거래‧조세 사건을 담당하는 반부패3과가 신설됐다. 담합을 포함한 공정거래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기업 수사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의 담합 사례 등을 토대로 리니언시 제도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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