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아파트도 예외 없다…층간소음 안 잡는걸까? 못 잡는걸까?[이슈크래커]

입력 2023-05-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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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무려 100억 원에 달한다는 이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커진 갈등이 보복으로까지 이어져 한 주민이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이사 온 A씨는 아랫집 이씨에게 발소리가 시끄럽다며 항의를 받았습니다. A씨는 억울했습니다. 이씨에게 수차례 사과했을 뿐 아니라 소음 방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겁니다. 집안 곳곳에 2.3cm 두께 소음 방지 장판을 깔고 슬리퍼를 신고 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층간소음에 화를 참지 못한 이씨가 윗집에 찾아가 욕설과 함께 고무망치로 현관문을 내리친 것입니다. 놀란 A씨는 이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특수협박 및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충격으로 A씨는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습니다.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품었던 부푼 꿈은 악몽으로 돌아왔습니다.

끊이질 않는 ‘층간소음 갈등’...도대체 왜?

주변에서도 집 안에 러닝머신을 들여 운동을 하거나 늦은 밤 마늘을 빻는 등 시끄러운 윗집 탓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분쟁은 계속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만6257건에서 2020년 4만2250건으로 크게 오른 뒤 2021년 4만6596건까지 치솟았습니다. 작년에도 4만 건을 웃돌았습니다.

때문에 층간소음 책임을 개인에 돌릴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에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층간소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건축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독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이 문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아파트는 크게 벽식구조와 골조식 구조로 나뉩니다. 기둥 없이 벽으로 천장을 받치는 벽식구조는 시공이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비용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음이 벽을 타고 다른 집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와 달리 골조식 구조는 천장에 수평으로 보와 기둥을 설치하는 구조로, 기둥이 공간을 침범해 공간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소음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구두를 신고 걸어도 아래층에서 느끼지 못하는 건 사무실에 기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아파트 대부분이 벽식구조를 채택했다는 겁니다. 1980년대부터 비용을 줄이고 빠르게 짓기 위해 골조식 구조가 아닌 벽식구조로 건물을 짓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들이 층간소음 실험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현대건설)

‘층간소음 갈등’ 심각한데 정부 대책은?

결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대책을 내놨는데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국토부는 올해 초부터 층간소음 사후확인제의 본격 적용을 위해 제도 사전점검을 위한 시범운영 중입니다.

층간소음 사후확인제는 공동주택 시공 후에도 층간소음 차단성능을 확인하는 제도로, 지난해 8월 이후에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됩니다. 정부는 공동주택 사업자가 아파트 사용 승인을 받기 전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검사 결과를 검사기관에 제출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검사기관이 사업자에게 손해배상 또는 보완시공을 권고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신기술 통해 해결한다” 층간소음 해결 나선 건설 업계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사들도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층간소음연구소를 운영한 삼성물산은 초음파 슬래브 두께 비파괴 측정 장비를 도입하고 소음 문제를 해결을 위한 기술 연구에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고중량 바닥 패널과 스프링을 활용한 층간소음 차단 신기술로 국가공인기관이 실시하는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 등급 평가에서 1등급 인정서를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현대건설도 층간소음 전문 연구시설 H사일런트 랩을 통해 진동과 소음을 다양한 환경에서 실험한 데이터 결과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벽채구조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GS건설도 바닥 마감에 바탕층, 중간층, 마감층 등 3중 습식 공정을 적용한 ‘5중 바닥 구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는 등 많은 건설사들이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기술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소음 기준을 충족하고 최대한 줄여나가기 위해 기술 연구개발 등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소음이라는 것이 개인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시도와 연구개발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해야…사후확인제 개선하고 건축방식·상담 기관 도입 필요”

▲SK에코플랜트가 층간 소음 저감을 위해 개발한 바닥 구조. (자료 제공=SK에코플랜트)

정부와 건설사들의 노력에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해결 움직임에 대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먼저 현재 건축 구조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소음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은 “층간소음을 줄이는 여러 신기술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입주자들이 만족하는 수준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안 전 학장은 “벽식구조로 짓는 것은 결국 비용 문제로 외국은 골조 방식도 많이 채택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골조식 구조 등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를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사후확인제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다 짓고 나면 소음 문제 해결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준공 시 소음 측정 데이터를 일률적으로 공개해 입주자들의 판단도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전문가는 소음 문제로 인한 갈등을 중재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웃 간 갈등을 풀어나갈 전문가를 양성하고 문제를 전문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는 기관을 도입을 제안 하는 방식입니다.

표승범 공동주택 문화연구소 소장은 “층간소음 문제는 심리와 감정적인 요소도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중재와 상담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표 교수는“대부분 층간소음 문제를 겪어도 어디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탓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면서 “올해 초 국토부가 500가구 이상 아파트에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 했지만 보류된 상태”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층간소음 문제. 정부와 건설사들의 노력에도 층간소름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이웃 간 층간소음 문제로 싸우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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