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다단계'로 자금 모집…여러 법인 통해 자금세탁 정황도
'경영권 승계' 지주사 골라 장기적으로 주가 밀어 올려
검찰, 라덕연 압수수색 이어 고액 투자자 참고인 조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작전 세력'이 조직적으로 주가를 부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기존 주가조작 수법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향후 수사에서 신종 범죄 유형을 어떻게 입증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주가조작 세력의 조직적 범죄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 3일과 4일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42) 대표의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주식거래 자료 등을 확보했다.
지난 5일에는 라 대표에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와 계좌 등을 넘기고 고액 투자를 맡긴 의사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앞서 검찰은 SG발 주가폭락 사태와 관련해 사건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10명을 출국 금지한 바 있다.
이들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가격을 정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매매'를 통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라 대표는 작전을 설계한 뒤 투자자를 유치해 주가를 견인했다.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원만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주가조작은 세력들이 ‘전주(錢主)’의 자금을 가지고 통정매매를 해 주가를 띄운다. 특정 한 종목만 작업한 뒤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SG발 주가폭락 사례는 금융 다단계로 자금을 모은 뒤 주가를 조작하는 신종 수법을 썼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가수 임창정 씨가 거론되듯 유명인을 행사에 끌어들여 위세를 부리고 다단계 방식 모집을 했다”며 “다단계가 반드시 사기인 건 아니지만, 이번 건 금융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투자자문 업체라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금융 다단계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이 다 엮여있다”며 "치밀하게 IP를 여러 곳으로 나누고 소수 계좌를 사용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받아 투자자 주소지까지 직접 이동해 매매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직원이 투자자 한 명을 데려올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수익금의 30%를 줬다고 한다. 회원 중 일부도 수수료를 받고 투자자를 모집·알선했다. 다단계 형태로 ‘큰손’ 투자자들이 대거 모이면서 운용자금만 1조 원 이상 유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가를 조금씩 밀어 올렸다. 타깃으로 삼은 8개 종목의 주가는 1~3년 동안 급상승 없이 꾸준히 우상향 흐름을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폭락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3년간 최저 404%(하림지주)부터 최고 1741%(대성홀딩스)까지 주가가 올랐다.
연루된 종목 대부분은 유통주식이 적고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인 지주사였다. 재무구조가 우량한 가치주로 세간의 의심을 피했고,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파생 금융 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해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았다.
또 여러 법인을 통해 자금을 세탁한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라 대표는 골프·리조트, 의료, 방송, 뷰티 등 다양한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했는데, 회원권이나 광고비 명목으로 꾸며 주가조작 수익금에 대한 수수료를 받았다고 한다.
검찰은 가담세력과 수혜자를 철저히 색출해나갈 계획이다. 피해자들은 남부지검에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고소장을 내고 있다. 라 대표가 폭락 사태의 배후로 지목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지난 4일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양측 간 법적공방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정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공모자의 범주를 가리는 게 중요한 만큼, 우선 검찰은 기준을 정하려고 할 것”이라며 “주가조작은 대주주와 결탁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관련성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도 수사의 핵심 포인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