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광화문이 드러낼 '시간의 지층'

입력 2023-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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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박꽃 기자
한때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끌며 유럽을 진두지휘했던 이들의 땅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무척 흥미로운 유적이 있다. 흔히 아는 화려한 유럽식 왕궁이나 기개 넘치는 동상, 잘 정비된 정원이 아니다. 도심 광장 한가운데에 깊숙이 파 놓은 독특한 지하 공간이다. 일반이 손쉽게 다가와 내려다볼 수 있도록 훤히 드러내 둔 지층에는 기원전 로마 시대의 건물 잔해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뿐만인가. 르네상스 시기 호프부르크 왕궁의 성채 일부와 근현대로 접어드는 18세기에 지어 올린 주거용 건물의 벽면도 함께 존재한다.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누적된 이 경이로운 땅 속 벽돌들은 비엔나가 매 시기 유럽 대륙의 주요 지역으로 활용됐다는 자부심을 상징한다.

땅속에 묻혀 있던 '시간의 지층'을 드러내고 보존해 일반이 볼 수 있게 하는 건 단순히 국가적인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삶의 감각’을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생존을 위한 각개전투를 펼치는 현대인에게 도시는 대개 먹고, 자고, 일하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무심한 발걸음을 재촉하던 이들이 번화가 한복판에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전 나와 같은 공간에 살았던 이들의 구체적인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시장을 이루고, 주요 공연의 무대가 형성되고, 때로는 대중을 결집하는 구호들이 넘실대던 역사의 공간에 잠시 멈춰서 보면, 동일한 지역을 공유하고 계승해 온 인류의 흐름 안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내 존재를 다시 새겨보는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된다.

곧 광화문 앞에서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땅속에 묻혀 있던 조선 임금의 길 '광화문 월대'가 복원을 거쳐 10월 중 국민과 만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월대(月臺)는 조선 임금이 경복궁 밖으로 나서 백성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행차로이자, 무과 시험을 치르거나 명나라 사신을 맞는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의 공간으로도 사용했던 너른 무대다. 본래 광화문에서 육조거리(현 세종대로) 방향으로 50m가량 뻗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노면 전찻길이 생기면서 땅속에 완전히 묻혀 100년간 잠들어 있었던 것을 문화재청이 복원하는 것이다. 광화문 월대를 다시 꺼내는 가을의 어떤 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그곳에 잠시 멈춰 서있어 보려 한다. 오랜 시간 이곳 서울 땅을 함께 밟았던 임금과 백성, 그리고 대중의 삶 끝에 기어코 내게로 이어진 인류의 맥을 함께 짚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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