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시각 여전...“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도부 오래 못 가”
한 달 전만 해도 ‘어대현’(어차피 당대표는 김기현)을 외치던 여권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등 김재원 최고위원이 설화를 빚을 때만 해도 ‘개인의 일탈’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논란이 이어지고, 김 대표의 민생 행보가 여론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책임론이 커졌다.
특히 내년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위기감이 엄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밑에서는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시각 이후 당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당원을 부끄럽게 만드는 언행에 대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에게 주어진 권한보다 엄격하게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와 관련해 두 차례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조수진 최고위원이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당 윤리위를 조속히 구축하고, 차후 언행으로 물의를 빚을 시 자격평가에서 벌점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은 여전하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전체가 로 퀄리티(low quality), 즉 품질 저하된 상태에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지도부도 오래 못 간다. 단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의 기강을 잡기 위해 당 대표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징계 사유화라도 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며 “그것부터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공개 주장까지 아니더라도 수면 아래에서는 “큰일났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당 초선 의원은 “단순히 경고한다고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이미 여론은 너무 안 좋아졌고, 당 지도부가 실수하는 모습이 내년 총선까지 직결될 텐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오늘 김기현 대표가 의원 정수 축소하겠다 말씀하셨는데, 그건 당내에서도 반발이 있을 수 있고 쉽지 않은 일이다”라며 “괜히 그런 이야기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PPAT(국민의힘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를 없애겠다는 등의 말만 나오고 본인이 중심에 서서 이슈의 중심이 돼야 하는데, 골치 아프다”고 덧붙였다.
당선 초반만 해도 여당에서는 김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가처분 신청 등 당내 혼란이 이어졌던 탓에 당내 안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에서였다. 여권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 잡음 없이 당을 잘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가 우파를 천하통일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를 때에도 ‘단순 헤프닝’으로 바라봤다. 지도부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선출직 최고위원이 혼자 말하는 건데 어떻게 통제하냐”고 반문했다. 친윤계(친윤석열)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재 의원은 지난달 14일 YTN 라디오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물어봤더니 굉장히 많은 분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물어봐서 즉흥적으로 대답했다고 그런다”라며 “김재원 의원님 본인이 스스로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김병민 최고위원도 “정치인 한 명의 발언으로 인해서 국민의힘이 그동안 노력해 왔고, 호남과 함께하기 위해 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폄훼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내년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당원 여론은 싸늘하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김 대표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무능한 지도부 사퇴해라...김기현 당대표 지역구 보수 텃밭, 울산 심판 시작이네’, ‘당대표의 의사전달력이 너무 약하십니다’, ‘김기현의 우유부단함과 리더쉽 부족으로 당이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당원들은 속이 뒤집어집니다’, ‘현 집행부론 총선 필패다. 다시 구성하라’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가 내년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고공행진’ 블로그에서 4‧5 재‧보궐 결과를 들며 “당의 지도부가 비상식적인 메시지를 쏟아내고, 지지층만 바라보며 점점 쪼그라드는 노선으로 간다면 다음 총선에서 PK와 수도권 우세지역마저 놓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당 중진 의원은 “엄중 경고 같은 것은 지엽적인 문제이고, 이제는 우리 지지층을 위한 정치보다도 국민을 향해 자세를 바로 다듬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