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 태권도?" 주먹 날리자 엄마가 학교로 불려 왔다

입력 2023-04-02 09:00수정 2023-04-0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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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한국 모자의 정착기 '라이스보이 슬립스' 19일 개봉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주)판씨네마)
“두 유 노 태권도?”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꼬마 얼굴에 화가 잔뜩 묻었다. 자신을 둘러싼 백인 아이들이 ‘라이스보이’라고 놀리며 침까지 뱉자, 결국 주먹을 치켜들고 만다. ‘라이스보이’는 다름 아닌 ‘쌀을 먹는 아이’라는 뜻, 아시아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주인공 동현(노엘 황)을 따돌리고 괴롭히기 위해 낮춰 부르는 인종차별 표현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한국 모자의 1990년대 당시 정착 과정을 다룬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지난달 30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에서 기자회견 열고 작품을 공개했다. 1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한국계 앤소니 심 감독은 이날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엄마와 아들의 사랑 그리고 어려움에 대한 영화”라고 연출작을 소개했다.

작품에는 교실에 아시아계 학생이 한두 명뿐이었던 유년기를 경험한 앤소니 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여럿 담겼다. 이유 없이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에게는 "두 유 노 태권도?"라고 말하며 세게 때려주라던 엄마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가, 도리어 교장선생님에 의해 엄마가 학교에 불려 온 일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졌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포스터 2종. 어린 시절 주인공 동현을 연기한 노엘 황(왼쪽)과 성장한 뒤의 동현을 연기한 이든 황(오른쪽) ((주)판씨네마)

“실제로 내 어머니도 학교에 가서 교장 선생님과 한 판 붙으셨다”고 말하며 개구진 웃음을 지은 앤소니 심 감독은 이날 “놀림받거나 왕따당한 일, (발음이 어려운 한국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지었던 일 등이 비슷하게 담겼다”고 했다.

영화는 인종차별,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질병 등 이민생활의 여러 어려움에도 따뜻함과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모자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후반부에는 최초로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와 친척을 만난 주인공 동현의 심경 변화도 섬세하게 담았다.

감독은 “그런 (실제 경험을 담은) 신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더 큰 의미를 지닌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면서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창피해하고 안 좋게 생각하던 아이가 한국에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그 역사를 알게 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정서적 여정’이기도 하다”도 설명했다.

▲앤소니 심 감독. ((주)판씨네마)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전체 분량을 16mm 필름으로 촬영했다. 오래전 홈비디오를 보는 듯한 뿌옇고 불투명한 화면으로 작품 특유의 아련한 영상 질감을 완성했다.

화면비 변화를 알면 영화를 한층 더 깊이 즐길 수 있다. 캐나다 분량은 1.33:1로 촬영했고, 한국 분량은 1.85:1로 영상의 가로를 더욱 길게 표현했다.

감독은 “캐나다 땅은 엄청 넓지만 거기에서 사는 주인공들은 너무나 힘들어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좁은 세상에서 산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한국에 왔을 때는 비록 캐나다보다는 작은 땅이지만 주인공들의 마음이 더 넓어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낯선 이국 문화 안에서도 꿋꿋이 일자리를 지키며 아들을 키워 나가는 엄마 소영역을 연기한 신예 배우 최승윤은 이날 “너무 불행한 여자인데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이 멋있었다”고 배역을 맡은 소감을 전했다.

성장한 동현(이든 황)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한국의 작은아버지 역을 맡아 짧게 출연한 강인성은 “90년대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삼촌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심사위원상, 밴쿠버국제영화제 관객상 등 24관왕 수상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이투데이 별점평 ★★★★☆
애틋하면서도 단정한 회고의 시선, 깊이감을 더하는 필름 화면의 질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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