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독사가 함축하는 사회적 책임
2012년 시행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과 2017년 시행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비해 이 법률은 유독 인간의 가치와 사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이 다가옴을 알면서도 관계의 단절을 지속한 채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 때문일 것이다. 삶의 허무함과 죽음의 쓸쓸함보다 관계의 단절이 함축하는 사회적 책임 때문이다. 왜 그들은 관계를 단절한 채 죽음을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고 홀로 견디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 미국의 윤리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에 의하면 인간은 그가 속한 집단의 특성은 물론 그가 생존하는 동안 성취한 업적에 비례해서 그의 임종 시 애도받을 가치가 정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는 국적 또는 민족, 종교적 신념 또는 사회적 정체성으로 설명되기 이전에, 사회구성원이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경제적 부, 사회적 명예, 정치적 권력에 의해 누군가의 죽음이 더 슬퍼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결코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버틀러에 의하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애도받을 권리를 보장할 때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삶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버틀러는 또한 모든 사람은 서로의 생명에 대해 어떠한 조건이나 가능성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보존할 윤리적 정치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생물학적 출생과 발달이 그의 이해타산의 결과와 상관없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는 원리로서 이해타산적 공리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발달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의 생존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내가 살아있음은 누군가가 나를 살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여건과 자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버틀러에 의하면 인간은 그가 과거에 이룬 경제적 성취 혹은 실패와 상관없이 그리고 미래에 예상되는 사회적 업적 또는 손해와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을 보존할 책무가 있다.
동등한 애도, 한국의 공감문화와 상통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애도받을 권리를 보장하여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살아있도록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서양 윤리철학자의 사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사회에서 이와 유사한 사상과 문화를 오히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혼상제의 의례 중 상례를 가장 중요시하는 문화와 우연한 인연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사상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인의 정(情) 문화는 비록 과거에 비해 조금은 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병상련 또는 인지상정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공감(sympathy)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관계를 단절한 채 혼자 임종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가족과 친척이 자신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고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무력감의 희생자일지 모른다. 진학과 취업, 경제활동과 가정생활에서 사회적 통념상 실패로 간주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은, 누구나 자신의 조건이나 가능성과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삶을 이어갈 권리를 우리 사회가 약속하였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회복하고 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할 만큼 가치 없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