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감원 바람'에 쑥대밭인데…애플만 달라, 왜? [이슈크래커]

입력 2023-03-30 15:44수정 2023-03-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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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CEO. (AP/뉴시스)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하며 실리콘밸리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메타, 구글, 트위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지난해부터 줄줄이 대규모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는데요. 특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는 지난해 11월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 등을 위해 1만1000명을 해고했습니다. 이는 전 직원 13% 인력에 해당합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넉 달 만인 이달 15일 1만 명을 추가로 해고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실리콘밸리에도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애플인데요. 대규모 정리해고와 사무실 폐쇄, 직원 복지 축소 등으로 비용 절감을 꾀하며 곡소리를 자아내는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달리 애플 내부는 비교적 잠잠합니다. 애플은 지금까지 대규모 해고 계획을 내놓지 않은 사실상 유일한 회사로 남아 있죠.

그러나 애플이 비용 절감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감소했습니다. 아이폰 생산 지연, 맥 수요 부진 등 내부 요인과 금리 인상, 환율 변동성, 우크라이나 전쟁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매출 감소에 영향을 줬습니다.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한 매출이며, 올해 1분기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걸까요? 애플의 ‘고육책’과 팀 쿡 CEO의 경영 방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AP/뉴시스)

애플, 무리한 사업 확장은 ‘No’…대규모 감원 대신 채용 중단·프로젝트 연기

우선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인력 조정에 나선 건 코로나19 영향이 큽니다. 앞서 빅테크 기업들은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특수를 누리면서 채용도 대폭 늘리는 등 덩치를 키웠죠. 그러나 가파른 금리 인상 등으로 경기 침체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다시 규모를 줄이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메타는 2019년 4만3000여 명에서 2022년 8만7300여 명까지 직원 수를 늘린 바 있습니다. 아마존도 2019년 74만여 명에서 2021년 15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력을 늘렸죠. 두 배 이상 인력을 늘린 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기업은 팬데믹 기간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는데요. 이 같은 노력은 처참한 실적으로 돌아왔습니다. 팬데믹이 완화되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자본시장이 경직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실적도 부진해진 겁니다.

그러나 애플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타 기업 수준의 공격적 채용도 진행하지 않았기에 대규모 인원 감축을 거칠 필요가 없었죠. 애플은 실적이 호황일 경우에도 경쟁사만큼 운영을 확장하지 않고 핵심 사업에만 투자하는 신중한 운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애플이 최근 위기 상황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애플 역시 경영 여건 악화에 직원들에게 매년 지급하는 4월 보너스를 10월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의 일부 부서는 1년 중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보너스를 받아왔으나 올해부터는 10월에 한 번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직원 보너스에 대한 비용이 회사 지출에 반영은 됐지만, 이에 해당하는 현금을 더 오랜 시간 보유할 수 있게 된 거죠.

또 핵심 프로젝트에 연구개발(R&D) 예산을 배정하기 위해 일부 사업을 내년 초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일부 팀의 채용을 제한하거나 아예 중단했으며,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경우 자리를 채우지 않고 부서·매장 이동도 제한하면서 추가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팀 쿡 애플 CEO(왼쪽부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P/뉴시스)
팀 쿡 경영 스타일 어떻길래…일론 머스크와 대조적

빅테크 기업들의 인력 감축 행보를 따르지 않는 애플의 노선에는 팀 쿡의 경영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팀 쿡은 주도면밀한 관리형 리더입니다.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애플에 1998년 입사해 제조, 유통, 공급 체계 즉 공급망관리(SCM)를 정비, 재고를 제조 공장에서 곧바로 배송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두 달 치가 넘었던 애플의 재고 물량을 2년 만에 10일 치 이하로 줄인 공은 아직도 회자됩니다. 맥 하드웨어 부문 책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거쳐 전임 스티브 잡스의 뒤를 잇게 됐습니다. 애플의 한 전직 임원은 “잡스가 제품 개발을 이끌었다면, 쿡은 회사를 현금 더미로 만든 사람”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죠.

팀 쿡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회사의 정리해고 가능성에 대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가능한 한 다른 방식으로 회사 비용을 관리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로 그는 자신의 올해 연봉을 삭감하면서 대규모 인원 감축을 피했습니다. 이달 12일 애플 공시에 따르면 팀 쿡은 기본급 300만 달러에 보너스 600만 달러, 주식 보상 4000만 달러를 포함한 49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기로 했는데요. 그는 회사에 자신의 연봉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팀 쿡은 기본급 300만 달러, 주식 보상과 보너스 83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994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블룸버그는 “CEO가 자신의 연봉을 삭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번 연봉 자진 삭감은 기업 실적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을 반영했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애플 주가가 하락하고 있던 상황에서 연봉을 과도하게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주주들을 염두에 두고 자진 삭감했다는 분석이죠.

팀 쿡의 시각이 반영된 애플의 정책은 미국 내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경영 방식과 대조를 이뤄 눈길을 끄는데요. 머스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침없는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집단 해고를 발표하는 건 물론이고 직원 복지를 단번에 없애버렸으며, 사무실 문을 닫았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SNS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날 선 설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올 1월에는 재정난 때문에 트위터 상징물인 파랑새 조형물, 네온사인, 회의 테이블 등 트위터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있는 물건 수백 개를 경매에 내놔 화제를 빚기도 했습니다.

경영 전문가들은 기업 CEO들이 일론 머스크보다는 팀 쿡의 방식을 따를 것을 제안합니다. 컨설팅 기업 딥워터 에셋 매니지먼트는 “기업이 애플의 각본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요. 팀 쿡의 신중한 경영 방식은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매출 감소에도 자신감 보인 팀 쿡

애플은 지난해 4분기 매출에서 2019년 이후 첫 감소를 기록했고 그 폭도 2016년 9월 이후 가장 컸는데요. 그럼에도 팀 쿡은 낙관적인 태도를 내비쳤습니다. 그는 실적발표회에서 ‘아이폰 가격이 끝없이 오른다’는 지적이 나오자 “아이폰은 인류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제품이 됐다”며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돈이 더 들더라도 아이폰을 계속 찾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아이폰의 향후 매출에 자신감을 보인 거죠.

또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최근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애플도 해당 기술 개발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애플은 실리콘 칩의 뉴럴 엔진 덕분에 로컬 프로세싱 분야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당 15조8000억회의 연산이 가능한 인공지능 반도체 칩인 ‘M2’를 공개한 바 있죠. 아직 콘텐츠 생성 등 새로운 AI 기술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는 개발하지 못했지만, 더욱 가열될 빅테크 기업들의 ‘AI 대전’에 나설 총알은 충분히 갖춰졌다는 겁니다.

한편 애플은 6월 5일부터 9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세계개발자대회 2023’(WWDC 23)를 개최합니다. WWDC는 애플의 신제품 출시와 함께 애플의 최대 연례행사로 꼽힙니다. 이 기간 애플은 전 세계 개발자들을 본사로 초청해 애플 주요 제품에 대한 운영체제(OS)의 다음 버전을 선보이고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능을 소개하는데요. 개발자들이 애플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새로운 앱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션도 진행하죠.

그런데 올해 WWDC는 더 특별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애플이 지금까지 선보인 적 없는 신제품, ‘혼합현실’(MR) 헤드셋을 공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통상 애플은 WWDC에서 새로운 하드웨어를 발표하지 않지만, 블룸버그는 올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MR 헤드셋이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MR은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혼합한 기술인데요. 반투명 렌즈 등을 사용해 현실에서 물리적 이동도 가능하고 손을 뻗어 그 안의 가상현실 요소와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를 2015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6월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올 1월과 4월, 이어 6월로 연기했습니다. 관측대로 MR 헤드셋이 공개된다면, 애플워치 이후 8년 만에 출시되는 애플 신제품이 됩니다. 애플은 헤드셋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신제품 발표에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애플의 특성이 다시 한번 체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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