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전자투표가 어렵다고 의결권 행사가 100%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임대리인이 주총에 직접 방문하는 식으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다. 다만 주총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주주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 집중투표제는 주주의 권익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정작 의결권 행사에서부터 삐걱댄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중요한 건 논란에 대한 태도다.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집중투표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기업과 기관은 책임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바빴다. KT&G는 예탁원의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탁원이 외국인 주주의 전자적 의결권 대리 행사를 전담했고, KT&G는 그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예탁원은 의결권 위탁 업무를 계약할 때 집중투표는 계약에 포함하지 않아 담당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 또 예탁원을 통하지 않고도 집중투표가 가능은 하니 문제 될 게 없다는 뉘앙스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집중투표제가 흔하게 이뤄지던 제도가 아니다 보니 진행 과정이 서툴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명 속에 책임회피가 자리한다는 점은 문제다. KT&G는 자사 주주들 의결권이 제한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예탁원 탓을 했다. 누군가를 탓하는 말보다 해결 방안을 먼저 말했다면 실망감이 덜 했을 터다. 계약 탓을 하던 예탁원은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해명했다. ‘별일 아니다’라는 식의 해명 대신 개선책을 먼저 언급했다면 실망감이 덜 했을 것이다.
주총은 끝났고 집중투표제는 해프닝처럼 끝났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기업과 기관의 책임 전가 속에 주주들만 난감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취재 중 “수익이 생긴 건 아니지만, 이번 일로 시스템 개선에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라는 행동주의펀드 측의 씁쓸한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행동주의펀드가 아닌, 기업이 조금 더 주주 권리에 관심이 많을 수는 없는 걸까. 최근 들어 주주 권리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일을 발판삼아 조금 더 주주 중심적인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