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의 일탈? 이젠 주류 콘텐츠…억울한 ‘웹소설’의 항변 [이슈크래커]

입력 2023-02-28 16:12수정 2023-02-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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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의원 후보. (뉴시스)

장예찬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청년최고위원 후보가 과거에 쓴 웹소설에서 여성 연예인들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장 후보는 2015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묘재’라는 필명으로 ‘강남화타’라는 판타지 무협 소설을 연재했는데요. 여기엔 전생을 깨달은 한의사가 성관계로서 연예인들을 치료하며 이름을 떨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해당 웹소설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실명이나 이들을 연상케 하는 묘사가 등장합니다. ‘이지은’, ‘김해수’ 등의 등장인물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이지은’은 가수 아이유의 본명입니다. 소설에서는 해당 인물을 ‘삼단 고음’으로 유명한 20대 여성 가수로 묘사합니다. 아이유의 노래인 ‘좋은 날’ 가사도 등장하죠. 실존 인물의 이름을 차용하고, 그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배치한 것입니다. ‘김해수’는 배우 김혜수를 연상시키는데,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발견됐습니다. 장 후보가 2019년 쓴 또 다른 웹소설 ‘색공학자’에서는 여성가족부 여성 사무관을 성적으로 묘사한 점이 추가로 드러나며 논란을 더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당 안팎으로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가수 아이유 팬들에게 대신 사과했고, 안철수 당 대표 후보 캠프 윤영희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다른 사람을 성적 대상화하고 전문 직업인을 희화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장 후보는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입니다. 그는 “판타지 소설 내용으로 딴지를 거는 게 어이가 없다”며 “저는 웹소설과 웹툰 작가로 활동했던 이력이 자랑스럽고,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권의 편견에 맞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고도 강조했죠.

이에 일각에서는 웹소설을 ‘야설(야한 소설)’ 정도로 치부하는 모습도 발견됩니다. 웹소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선에 우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장 후보의 이번 논란으로 웹소설 콘텐츠의 작품성과 성장동력이 폄하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웹소설의 성장 과정을 되짚어보며, 업계 종사자의 말까지 들어봤습니다.

▲(사진제공=황금가지,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웹소설, 태동은 PC통신 문학…플랫폼 만나며 급격히 성장해

웹소설은 말 그대로 ‘웹(web)에서 연재되는 소설’입니다.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장르 소설을 지칭하죠. 독자들의 몰입을 부르고 이탈을 막기 위해 보통 편당 5000자 이내 분량으로 구성되며, 5분 이내에 읽을 수 있습니다. 가격 역시 편당 100원 정도로 부담이 적습니다.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웹에 소설을 게재하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1990년대 PC통신 문학으로 불리는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가 대표적입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을 쓴 귀여니를 중심으로 인터넷 소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이틴 로맨스 계열의 인터넷 소설은 2010년대 스마트폰이 탄생, 대중화되며 빠르게 성장했고, 대형 포털사이트와 만나며 현재의 웹소설로 도약하게 됐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2013년 ‘네이버 웹툰’을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탈바꿈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며 웹 콘텐츠에도 변화가 필수적이었던 것이죠. 동시에 네이버는 웹소설 탭을 새로 개설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웹소설 공모전도 개최하며 신규 작가 및 독자 유입을 꾀했죠.

이에 질세라 카카오도 같은 해 ‘카카오페이지’라는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달빛조각사’가 큰 인기를 끌며 카카오페이지도 웹소설 플랫폼에서 입지를 다지게 됐죠. 이후 웹소설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이용자 수도 급증하며 웹소설 시장도 고속 성장했습니다. 플랫폼들은 빠르게 유입되는 이용자들을 위해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내세운 작가들을 유치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로맨스뿐 아니라 판타지, 무협, 공상과학(SF), 스릴러 등 다채로운 장르의 웹소설이 탄생했죠.

▲(사진제공=네이버시리즈, JTBC)

당초 비주류 문화 취급…OSMU 거치며 파급력까지 막강해져

사실 웹소설은 비주류 문화에 속했습니다. 문학계는 순수문학을 주류, 장르문학을 비주류로 정하고 선을 그었는데요. 판타지 소설 작가 이영도, SF 작가 듀나 등의 작품이 꾸준히 인기를 끌었지만, 여전히 ‘변방 문학’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김초엽, 천선란 작가 등의 SF소설은 주요 문학상에서 상을 거머쥐는가 하면, 베스트셀러 매대에는 웹소설들이 오르기 시작했죠. 특히 웹소설의 무서운 성장세는 웹소설이 다른 콘텐츠를 제치고 콘텐츠 시장에서 주요 축을 맡을 수 있는 주요 산업이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게 했죠.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100억 원 규모였던 웹소설 시장은 2018년 4000억 원, 2021년 6000억 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10년 새 무려 60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죠.

열악함을 지적받던 웹소설 작가의 처우 역시 개선되고 있습니다. 상위권 인기 웹소설 작가의 원고료 기반 연봉은 1억~2억 원대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웹소설 원작이 웹툰, 드라마, 영화 등의 2차 콘텐츠 지식재산(IP)으로 활용될 경우엔 수십, 수백억 원 대의 ‘잭팟’까지 터뜨릴 수 있죠. 잘 나가는 IP 하나로 다방면의 분야에서 수익을 거두는 원소스멀티유즈(OSMU)가 본격화되는 경향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외에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다수의 웹소설이 웹툰,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며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웹소설 업계, 장 후보 논란에 우려…“웹소설 인식 여전히 가벼운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돌연 웹소설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면서, 업계에서는 당혹감을 표하는 모양새입니다.

조아라, 리디에서 작품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 A 씨는 “장 후보 논란의 쟁점은 실존 인물의 정보를 차용한 것”이라고 짚었는데요. A 씨는 “물론 실존 인물을 모델 삼아 작품을 집필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장 후보의 작품은 그 대상이 지나치게 특정적”이라며 “작품 속 등장인물이 다수에게 특정 인물을 연상케 하며, 성적 대상화돼 피해를 야기한다면 이것을 작품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아직 일각에서는 웹소설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가볍기도 하다”며 “이번 논란으로 웹소설 작가에 대한 시선이 더욱 나빠지진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작가 B 씨도 “이번 논란을 웹소설 전반의 문제로 치부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성적 대상화 논란이 거세지자, 장 후보는 27일 BBS 라디오에 출연해 “특정 연예인이 연상돼 그 팬분들이 우려하신 부분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도 “저는 100% 허구인 판타지 소설을 썼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쟁점은 성적으로 묘사된 소설 속 인물이 실존하는 여성 연예인들을 연상케 한다는 사실입니다. 웹소설 작가뿐 아니라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나, 이것이 타인을 성적 대상화하고 전문 직업인들을 희화화하는 것까지 보장하는 권리는 결코 아니죠. 당 안팎으로, 그리고 대중의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면책 특권처럼 내세운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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