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퇴직금 50억 주는 꿈의 직장

입력 2023-02-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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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사회경제부 법조팀 이수진 기자
6년간 일했던 전 직장을 퇴사하며 받았던 퇴직금 액수를 기억한다. 주변에 비교 대상도 딱히 없어서 그 액수에 크게 불만도 없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말았다.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한두 개 사고, 빚 갚는 데 보태다 보니 남은 퇴직금은 금세 0원이 됐다.

기자는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와 상황이 비슷했다. 물론 병채 씨의 월급이 더 많긴 했지만, 엇비슷한 나이에 전 직장에서 6년간 근무했고 2021년 퇴사해 퇴직금을 받은 점은 같다. 그런데 그의 퇴직금은 50억 원이다.

50억 원. 세금을 제외하면 25억 원이라지만 그 액수만 놓고 보면 대기업 임원 퇴직금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 돈의 성격이 뇌물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령과 경력, 직급과 담당 업무 등을 따져봤을 때 그가 받은 50억 원이 뇌물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 꿈의 직장은 존재할 수 없다.

법원이 8일 곽 전 의원의 뇌물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화천대유 직원이던 그의 아들 병채 씨가 받은 것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통상적인 퇴직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퇴직금을 받았는데 법원의 무죄 판단으로 이 돈은 그냥 막대한 금액의 퇴직금이 됐고 화천대유는 꿈의 직장이 됐다. 권력층 자녀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고 이를 보는 국민들은 좌절감을 맛본다.

이번 판결로 검찰이 혐의 입증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2021년 10월부터 시작된 ‘50억 클럽’ 검찰 수사는 몇몇 관계자들 조사에 이어 지난해 2월 곽 전 의원을 기소한 뒤 조용했다. 그러다 보니 검찰이 전관과 언론인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데에 부담을 느껴 사건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곤 했다. 곽 전 의원 역시 검찰 출신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50억 클럽 수사가 힘이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다시 찾아야 한다. 대장동 개발 사업 밑그림이자 50억 클럽 수사의 첫 단추인 곽 전 의원의 뇌물 혐의를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 자녀에게 막대한 돈을 주는 꿈의 직장은 계속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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