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 비극 다룬 ‘다음 소희’…“죽음 애도되지 않고 더 비참해지더라”

입력 2023-02-06 15:10수정 2023-02-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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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야' 이후 9년만에 '다음 소희'로 돌아온 정주리 감독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애도되지 않고 더 비참해지더라고요.”

2017년 한 콜센터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던 청소년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통신 대기업 하청 콜센터에서 고객의 해지를 방어하는 일을 도맡았던 특성화고등학교 재학생에게 찾아온 비극이다. 6년 전의 실화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린 영화가 8일 개봉하는 ‘다음 소희’다. 지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계의 관심을 받았다.

6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정주리 감독을 만나 왜 이 영화를 연출했는지 물었다. 잠시간의 침묵을 지키며 답을 신중하게 고르던 정 감독은 “그 죽음 하나가 아니라, 그전에도 후에도 비슷한 죽음이 더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그런데 책임 있는 사람들이 반성을 하기보다는 (그 죽음을) 더 비참하게 만들더라”고 짚었다. 그로 인한 좌절감이 작업의 동력이 됐다고 했다.

‘다음 소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전반부가 특성화고 실습생 소희(김시은)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실제 사건에 입각해 구현했다면, 후반부는 그 죽음에 지분이 있는 어른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책임을 묻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우직함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다음 소희'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는 형사 유진 역을 연기한 배두나의 공도 컸다고 한다. 배두나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소재로 했던 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도희야’(2014)에서도 주요 역을 맡아 출연하면서 정 감독과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정 감독은 “독일에서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를 한참 찍고 있던 배두나가 ‘다음 소희’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답을 줬다”고 돌이키면서 “나중에 만나 어떻게 단박에 선택할 수 있었냐고 물으니 ‘이 영화는 세상에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더라. 어떤 식으로든 그걸 돕고 싶다고 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 감독은 ‘도희야’에 이어 ‘다음소희’로 연이어 칸영화제에 초청됐다. 장편 연출작 두 편이 모두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셈이다. 정 감독은 다만 '다음 소희' 출품 당시에는 후반작업을 다 끝마치지 못한 상황이었다면서 “극 중 눈이 오는 장면은 전부 CG인데 (영상 하단에) ‘괄호 열고 눈 CG’라고 써서 보냈을 정도”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럼에도 공식 초청작 목록에 이름을 올린 건 “이 작품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이 자기 삶에서 느끼는 압박, 본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데 (심사위원들이) 이입한 게 아닌가 싶다”면서 “영화라는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자기들의 이야기를 대입해 생각한 것 같다”는 것이다.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만드는 작품마다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는 정 감독이지만, 두 번째 작품인 ‘다음소희’를 선보이기까지는 9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대중과 소통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않은 그는 “영화는 자본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서 “’도희야’를 끝내고 나서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어 3년 넘는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막상 투자사를 찾아 나서고 제작 의사를 타진해보니 다들 환영하지 않더라. 그렇게 6년이 훌쩍 가버렸다”고 돌이켰다.

‘다음 소희’는 2022년 1월 촬영을 시작해 2월 말에 촬영을 마쳤다. 정 감독은 “그 사이 이미 있는 시나리오를 조금 각색해 연출해보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끝내 도장 못 찍은 이유는 결국 하나”라면서 “내가 가장 온전하게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 감독은 “'다음 소희'가 다른 영화에 견주어 봤을 때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스펙터클이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안다”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두 시간 남짓 깜깜한 극장에 함께 앉아, 비록 지금은 죽었지만 구체적으로 살아있었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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