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폭주하는 중국, 제자리걸음 한국

입력 2023-01-30 05:00수정 2023-01-3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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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국제경제부 차장

중국의 ‘생떼’가 못 봐줄 지경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해친다고 상대국에 보복을 일삼은 게 한두 해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갈수록 억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 포기 후 변이 확산 우려가 커지는데도 정보를 공유하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요구를 무시했다. 중국 국민조차 당국의 ‘깜깜이’ 통계를 못 믿겠다며 ‘집콕’을 하는 마당에, 음성 확인서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한국·일본의 출장길을 하루아침에 막아버린 건, 분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재빠르게 중국발 입국 제한에 나선 미국과 유럽에는 찍소리 못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차이나불링(China bullying·중국의 약자 괴롭히기)’에 가깝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막강한 소비력을 무기로 비위를 거스른 상대국의 ‘밥줄’을 끊어왔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티베트 독립 세력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나자 에어버스 150대 구매를 취소했다. 중국 인권 운동가 류사오치의 노벨평화상 수상 보복으로 6년간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제한했다. 2010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하자 희토류 원소 수출을 중단했다.

중국 정부의 보복은 네티즌의 광기와 결합하면서 파괴력을 더했다. 2016년 한국의 사드 미사일 배치 결정 후 롯데그룹은 중국 정부와 일반 국민의 ‘조리돌림’을 못 견디고 2조 원 가까운 손실을 본 채 시장에서 철수했다.

트집도 점점 중화우월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언급한 BTS를 향해 중국 네티즌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국가 존엄을 건드렸다며 악플 테러를 가했다. 중국 게임업체가 출시한 한복 의상을 두고 중국 누리꾼들은 중국 옷인 ‘한푸(漢服)’로 표기하라고 맹공했다. 하다 하다 최근엔 ‘음력 설(Lunar New year)’을 ‘중국 설(Chinese New Year)’로 표기하지 않는다고 노발대발하고 있다.

독재자 마오쩌둥을 구원자로 여기는 시진핑 집권 후 중국은 더 이상 ‘가까운 이웃’이 아니다. 대만이 동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한국의 생존마저 뒤흔든다. 대만에서 미·중 전쟁이 벌어지면 주한미군 병력이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대만해협 유사시 한미동맹 활용 의지를 내비쳤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한국의 안보 공백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만 전쟁을 강 건너 불 구경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국 승리는 곧 중화제국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실질적 위협으로 변한 지 오래고, 더 큰 파고가 닥쳐오고 있지만, 우리의 논의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경제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척을 지면 안 된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명 ‘안미경중’ 논리다. 한국을 ‘속국’으로 여기는 인식을 버젓이 드러내고, 툭하면 보복을 일삼는 국가를 상대로 언제까지 ‘친구’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독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오랜 금기를 깨고 무기 지원을 결정했다. 국방예산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여론 분열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전범국 멍에를 안고 있는 독일의 사회적 논의가 과거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을 침략해 총구를 겨눴는데도 ‘평화’ 타령을 하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자 티모시 가튼 애시는 “독일은 낡은 사고가 수명을 다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식을 갖추지 못해 대단한 혼돈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한국 사회도 생각을 진척시켜야 한다. 0ju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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