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사기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입력 2023-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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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의 무서움은 평범함에서 나온다. 전세살이 비중이 줄었다곤 하지만, 사회초년생부터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전세살이를 겪어야 한다. 누구나 경험하는 주거 형태가 무엇보다 사기에 취약한 제도라는 것을 알고 나면 셋집살이는 공포로 바뀐다.

속칭 ‘빌라왕’ 사태는 국민의 전세살이를 좌불안석으로 바꿔놨다. 전세사기 일당은 신축 빌라의 부실한 시세 산정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제도로 통용되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체계의 빈틈을 악용했다. 피해 규모만 1700억 원에 달한다.

국민적 불안에도 해결책은 없다시피 한다. 정부는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피해 지원과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요원하다. 간담회는 ‘민심 달래기’ 성격이 짙었다. HUG는 집주인 중도 사망 사태에 우왕좌왕했고, 보증보험에 들지 않은 이들에겐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사실 공지에 그쳤다.

전세사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 역시도 5월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 집주인 계좌에 들어있다. 보증보험은 없다. 전세 사기를 취재하면서 불안은 커졌고, 정부에 대한 믿음은 작아졌다. 친한 친구는 지난해 전세로 거주하던 원룸 건물 전체가 경매에 넘어갔다. 유행 중인 전세사기와 종류는 다르지만, 사고 원인은 빌라왕 사태와 유사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한다. 전세사기는 어쩌다 한 번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항공기 사고보다,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와 같다. 전세사기는 더 잦고, 더 가깝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이유다.

‘모든 규정은 누군가의 피로 쓰인다’는 말처럼, 이번 전세사기를 계기로 더는 같은 수법이 발붙이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신축 빌라의 보수적인 시세 산정과 보증한도 제한 등이 필요하다. 보증보험 가입자에겐 일단 보험처리를 시행한 뒤,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피해자에게 혹독한 겨울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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