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제에 사업장 쪼개는 눈물의 中企

입력 2023-01-03 06:00수정 2023-01-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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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주(민) 노동자] 2-1. ‘3D’ 지키는 산업역군

내국인은 돈 줘도 일 안한다는 뿌리산업…정부 쿼터제로 인력유입 제한
‘궁여지책’ 사업장 쪼개 사람 채웠지만…납기일 맞추기엔 아직도 ‘빠듯’

▲경기 김포시 양촌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기전금속 주물공장에서 근무 일주일차 자나(방글라데시) 씨가 틀 제작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눈물의 소산이죠.” 경기 김포시 양촌읍에서 주물공장을 운영하는 김동현 한국기전금속 대표는 이주노동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뿌리산업을 대표하는 주물산업이 ‘3D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공장에선 젊은 인력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빈자리를 채운 건 외국인이었다. 나이 지긋한 숙련공들과 이주노동자가 공장을 지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내국인을 수소문해도 일할 사람은 찾기 힘들고 외국인은 쿼터제로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어렵게 네팔과 태국 국적의 이주노동자 2명을 채용한 김 대표는 이들이 공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어린아이를 둔 부모처럼 노심초사했다.

김 대표의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은 20명이다. 네팔,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중국, 캄보디아, 태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들이 공장 곳곳에서 분주히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크게 주물 원자재인 고철과 선철을 녹이는 용광로 라인과 녹인 쇳물을 모래 틀에 붓는 자동화·수동화 2개 작업, 이를 분리해 용접 및 후처리 라인 등에서 2인 1조로 근무하고 있었다.

연기와 분진이 날리는 공장에선 연차가 낮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숙련공들과 바디랭귀지를 하며 빠르게 라인을 돌렸다. 근무 2일차인 방글라데시 국적 소아드 씨는 묵묵히 일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숙련공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 보이기도 했다. 연차가 비교적 높은 외국인들은 여러 기계를 능숙하게 다뤘다. 김 대표는 “주물 제조 공정은 딱히 전문직을 요하는 업종이 아니라서 세 달 정도만 일하면 금방 적응할 수 있다”며 “1년 정도 지나면 독자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 양촌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기전금속 주물공장서 생산된 금형에는 ‘한국산’이라는 각인이 새겨져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이 공장에서 근무한 지 10년 차인 네팔 국적 만 씨는 일한 지 1주일 정도 지난 방글라데시 국적 자나 씨와 함께 수작업으로 형상 주물을 제조하고 있었다. 만 씨는 자나 씨에게 단순 업무를 시키며 한 생산라인을 책임졌다. 내국인 숙련공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 씨는 성실근로자 제도를 활용해 오랫동안 이 공장을 지키고 있다. 4년 10개월간 성실하게 근무한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를 한 번 더 채용할 수 있는 재입국 특례제도를 적용받은 만 씨는 공장의 핵심 인력으로 꼽힌다. 만 씨는 “이 공장에서 외국인 중에 가장 오래 일했고 최근에 네팔 아내와 결혼을 맺었다”며 “7개월 된 딸도 있어 기숙사 안살고 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땀과 열정은 공장 출하기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쇳물이 금형에서 굳어져 벨브와 스프링 등 산업 부품들로 만들어졌다. 이주노동자들은 출하기지에서 생산품을 수북이 쌓고 있었고, 그 모든 생산품에는 ‘한국산’이라는 각인이 선명하게 남겨졌다. 외국인의 손에 탄생한 ‘메이드 인 코리아’인 셈이다.

이곳 이주노동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물공장에서 근무한다. 이후 시간은 공장 옆 사무동 건물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외출 및 휴무를 제외하면 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돌아가는 월급은 연차 및 초과근로에 따라 적게는 200만 원 후반부터 많게는 500만 원 후반까지 다양했다.

◇쿼터 때문에 인력확보 한계...‘사업장 쪼개기’ 궁여지책

▲경기 김포시 양촌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기전금속 주물공장서 5년차 근무자 카우찬(미얀마) 씨와 3년차 근무자 라이루(스리랑카) 씨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정부는 구인난이 심각한 제조업에 쿼터를 확대했다. 용접공 등과 같은 전문인력(E-7)에 대해 비자 쿼터를 폐지했고, 업체당 근로자의 20%까지 외국인 고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언발에 오줌누기’나 다름없다고 토로한다. 이들은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의 확대가 아닌 폐지를 외쳤다. 늘린 쿼터에도 공장 가동 인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공장문을 닫거나 궁여지책으로 ‘사업장 쪼개기’라는 편법까지 사용하고 있다.

연 매출액 120억 원 정도를 기록하는 한국기전금속의 내국인 근로자는 23명이다. 그동안 외국인 쿼터제로 내국인 피보험자 수가 11명 이상 30명 이하 영역에 속하는 김 대표의 공장은 E-9 비자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들을 최대 10명(현재 15명)까지만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주물공장에선 20명의 이주노동자가 근무한다. 쿼터제 총 고용 한도보다 2배 많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것은 사업장을 쪼갰기 때문이다. 가족 명의로 직원 수 1명인 ‘○○산업’이라는 하청업체 2곳을 만들었다. 내국인 피보험자 수가 1명 이상 5명 이하라면 총 5명(현재 9명)의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다. 이렇게 김 대표 명의의 기업에 10명, 쪼갠 하청업체 2곳에 5명씩 해서 총 20명의 이주노동자가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10명 남짓한 이주노동자들이 3000평 규모의 공장 전 과정에 투입되기는 무리가 있다”며 “작년에 시행된 주 52시간제를 기점으로 회사 쪼개기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단지 내 주물공장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쪼개기 편법은 산업현장에서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기업도 공장 가동을 가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쓰고 있었고 정부도 무작정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동현 한국기전금속 대표가 경기 김포시 양촌일반산업단지에 있는 사무실에서 이주노동자 쿼터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청년들은 제조업을 멀리하고 쿼터제로 한정된 외국인들도 3D 업종보다 일하기 수월한 직종으로 이동하면서 중소기업에선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납기를 가장 잘 지키는 것으로 인식돼 왔는데 요즘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납기를 맞출 수가 없다”며 “외국 인력 전체 쿼터와 개별 기업 쿼터를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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