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인간' 벗어나면 불편함 시작... 그게 걷기 좋은 도시 만들어야할 이유"

입력 2022-12-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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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평균 인간’ 중심으로 돌아간다. 버스의 손잡이는 키가 다 자란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치되고, 지하철 입구의 계단은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지 않는 다리 건강한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당신이 이 평균적인 범주에서 벗어날 때, 불편함은 시작된다. 신간 ‘걸을 수 없는 도시, 걸어야 하는 사람'이 드러내는 문제의식이다. “누구나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역설하는 책을 공동집필한 변완희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28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걸을 수 없는 도시, 걸어야 하는 사람'을 공동집필한 오성훈, 변완희 (왼쪽부터) (박꽃 기자 pgot@)

오 선임연구원은 "장애인, 어린이, 노인만을 교통약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보행자는 자동차에 비해서는 약자”라고 잘라 말했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을 예로 든 그는 “자동차가 없는 엄마, 아빠는 유모차를 밀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게 너무 어려워서 결국 제한된 구역 내에서만 움직이게 된다”고 했다. “연구를 해 보니 그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이 육아 스트레스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무거운 짐을 든 사람, 술에 취한 사람처럼 누구든 걷기 어려운 상황은 생기게 마련이다. 일시적 장애는 노인이 되면 상시적 장애로 전환된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시력이 약해진다. '평균 인간'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책에는 "병이나 별다른 사고가 없더라도 시간이 흘러 오래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된다"면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공정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에 대한 배려가 강조돼야 한다”고 썼다.

▲'걸을 수 없는 도시, 걸어야 하는 사람' 책표지 (교보문고)

우리 도시의 보행자 배려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유모차, 휠체어를 쉽게 태울 수 있는 저상버스는 2020년 기준 10대 중 3대가 채 되지 않는다. 주행 시속 30km를 넘겨서는 안 되는 노인보호구역은 2019년 전국 1932개소로 어린이보호구역 8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변 연구위원은 특히 노인 보행권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절실하다면서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늘어나는 게 통계로 현격하게 보인다”고 했다. 도로를 걷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노인은 2019년 628명으로 전체 사고의 56.1%를 차지한다. 어린이 사망자 비율 2.2%와 큰 차이다.

보호구역 설치 등 주행 규제 정책도 중요하지만, 두 저자는 근본적으로는 보행자 중심의 환경으로 도로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스팔트를 없애고 화분과 카페 의자를 두는 겁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골목길이라면 운전자도 시속 50km로 ‘훅’ 지나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오 연구위원은 “누구나 걷기 좋은 도시인 파리나 브뤼셀도 기존의 건축물을 다 때려 부숴서 안전해진 게 아니라 차량이 서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불법주차 문제에 시달리는 서울 도심의 주택가와 골목길에서도 실현 가능한 변화일까. 보행자 사고도 대부분 이런 곳에서 벌어지지만,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자동차를 모두 수용할 주차 공간이 부족한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라 해결이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오 연구위원은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에 따른 유류세 인상'을 들며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고 있다고 했다. 수출 타격을 막으려면 징벌적 과세를 피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유류세는 오른다는 것이다. 그 때에는 "대체교통수단이 잘 갖춰진 인구고밀도 도시 서울에서도 모두가 자동차를 운행해야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변 연구위원은 "결국은 많이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바"라면서 "이 변화는 모두에게 좋은 보행 환경이 전제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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