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울중앙지법의 '리틀 포레스트'

입력 2022-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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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1층 동관과 서관 사이에는 ‘작은 숲’이 있다. 진짜 숲이 아니라 휴게실에 제법 많은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처럼 조성한 공간이다. 대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법원 구성원들도 그곳에서는 차를 마시며 환하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법원의 삭막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공간이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해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자연친화(自然親和)다. 인간에게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친근함과 안온함을 느낀다는 말과 맥이 닿아있으니까.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취업에 실패하고 낙향한 혜원(김태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치열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의 삶이 더 낫다는 식의 해석은 이 영화를 납작하게 만든다. 제목이 지칭하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는 물리적 환경보다는 심리적 환경에 더 가깝다. 종국에 혜원이 얻는 것은 삶이 지칠 때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작은 숲을 내 마음에 조성해야 건강한 생(生)을 살 수 있다는 감각이다.

마지막 공판에서 기자들이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말을 정신없이 받아치다가 잠깐 고개를 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피고인(혹은 피고)이 최후 진술을 할 때다. 최후 진술은 대부분 변호사가 첨삭한 티가 난다. 그럼에도 발화자는 피고인들이기에 그들의 말에 짐짓 귀 기울이게 된다. 그 진술에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간다.

판사에게 실형 선고를 요청한 뒤 무심하게 서류를 넘기던 검사도 그 순간에는 곁눈질로 피고인을 본다. 그 이유는 새로운 삶을 운운하며 울먹이는 피고인이 뻔뻔스러워서 일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일 수도 있다. 여하튼 새로운 삶을 살게 선처해 달라는 피고인의 말은 진심이든 아니든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굵직한 정치·경제 사범들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삶을 영위하다가 저마다의 이유로 법정에 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분명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해자 서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각자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작은 숲이 있었더라면 이처럼 불행한 순간은 오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의 토로다.

법원에 있는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마다 우리 모두의 삶에 작은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정의를 저울질하며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찰나적으로나마 접속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내 마음의 작은 숲 말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며 선처를 호소하던 무수한 ‘그들’의 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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