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삼성생명법’ 누구를 위한 법 개정안인가

입력 2022-12-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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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으로 잘 건넜는데, 갑자기 건널목을 지우고 옆에 다시 그리더니 무단횡단했다고 하는 꼴 아닌가요?”

최근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에 대한 보험 업계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오랜 기간 적법하게 보유한 주식을 갑자기 강제매각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지적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용우 의원이 밀어붙이고 있는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소유한 주식과 채권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특정 계열사의 주식을 총자산 3%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는 보유주식을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시가’로 평가하게 되면, 삼성생명과 화재는 투자 한도 초과로 20조 원이 훌쩍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한다.

‘삼성생명법’의 의도는 명확하다. 개정안에 영향을 받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2곳뿐이다.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끊어내려는 것이다.

‘삼성저격수’를 자처하는 박용진 의원은 “삼성생명이 주주와 계약자들 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사들였고, 이는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강화 목적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 업계와 재계에선 “보유 주식을 시가로 변경하자는 개정법안은 기존의 적법한 투자를 위법상태로 만들겠다는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삼성이 새로 그려진 건널목에 당황했던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를 매각하도록 한 유권해석을 번복해 904만 주를 매각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삼성SDI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 404만 주를 추가로 매각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 역시 금감원의 말 바꾸기가 불을 지핀 사건이다. 2016년 금감원은 삼바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는데, 2018년 4월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출신이 금감원장에 임명되면서 '문제 있다'로 뒤바뀌었다.

다시 삼성생명법으로 돌아가 보자. 삼성생명법이 통과돼 보유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면 주가 변동성에 따라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주가가 오르는 계열사 우량 주식은 매도하고, 반대로 가치가 하락한 부실한 계열사 주식에 추가로 투자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배당으로 연간 7400억 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특별배당으로 8020억 원을 받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큰 배당이익과 시세차익을 낼 수 있는 우량주를 처분하고 이보다 수익이 적은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삼성전자 주주들은 20조 원이 넘는 매물 폭탄을 받아내야 한다. 개정안이 최장 7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있지만, 잠재적 매도 물량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경영권도 영향을 받는다. 법 개정안 통과 시 삼성생명과 화재는 투자한도 초과로 삼성전자 주식을 최소 9.1%(생명 8.3%, 화재 0.8%) 매각해야 한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1대주주 지위를 잃게 되면서 삼성물산(전자 지분 5% 보유)이 1대주주로 올라가고,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은 보유한 전자 지분 가치가 삼성물산 총자산의 50%를 넘기 때문에 지주사로 전환된다.

지주회사인 물산은 자회사 주식을 30% 이상 보유해야 하는 만큼 90조 원을 들여 전자 주식 25%를 사들여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고, 최대주주가 되는 것을 피하려면 전자 주식 보유 비중을 2대 주주(1.9%)보다 낮춰야 한다. 삼성물산도 전자 보유지분 5% 중 3.1% 이상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경우 삼성 계열사와 이재용 회장 등 삼성가의 지배력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외국인의 전자 지분율 증가로 현금배당 국외 유출액은 수십조 원 증가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매각하는 주식을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하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 경우 경영권 유지에 문제가 없고, 주가 하락 등 위기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수인 반도체 산업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대만 TSMC 등과 경쟁하기 위해선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한데, 수십조 원의 자사주 매입으로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법’ 시행이 삼성전자는 물론,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까지 꺾는 형국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삼성생명법은 보험가입자와 주주, 기업, 국가 그 누구에도 도움 되는 구석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 개정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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