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14억 인구 중 단 11명이 없어서”...중국, 월드컵 출전도 관전도 '록다운'

입력 2022-11-29 16:31수정 2022-11-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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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4억 명, 경제 규모 세계 2위, 하계 올림픽 최근 3회 평균 종합 2위.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세계 79위.

명실공히 다방면에서 ‘강국’ 반열에 올라섰어도 세계인이 즐기는 축구 축제 FIFA 월드컵에서만큼은 유난히 작아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터키, 브라질, 코스타리카에 3전 전패를 당하고,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중국의 본선 진출을 이룬 감독으로서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본선 진출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그게 끝이었다.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까지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가보지 못했다.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천문학적인 돈을 경기력 향상에 쏟아부었지만 허사였다. 본선은 다시 꿈의 무대로 남았다.

이 정도면 굴욕이다. “인구가 14억 명이어도 고작 11명의 축구선수가 없다. 이는 엄청난 수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매 하계·동계 올림픽 때마다 메달을 휩쓸어가는 중국으로서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시진핑의 세 가지 소원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주석이던 2012년 2월 20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크록파크 경기장에서 축구공을 차고 있다. 더블린/로이터뉴시스
수십 년 동안 배드민턴과 탁구 같은 스포츠를 지배해온 중국이 탄탄한 선수 11명을 발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축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축구 집착을 잘 몰라서 나온 말일 수 있다.

시진핑은 주석에 오르기 1년 전인 2011년 베이징을 찾은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세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

그는 2014년 중국 축구 시장이 4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 이듬해인 2015년 축구를 자국 국가 스포츠로 만들 계획을 세운 중국은 모든 학교에서 체육 교과과정에 축구를 포함하도록 하는 한편 2025년까지 축구장이 있는 학교 수를 5000개에서 5만 개로 10배 늘리는 목표도 세웠다.

2016년에는 이탈리아에 4차례나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마르첼로 로메오 리피 전 감독을 중국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 2019년 아시안컵에서 중국의 8강 진출을 이루기도 했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치펭은 “당시에는 축구에 대한 큰 희망과 자신감이 있었다”며 “내부에서는 정부가 축구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우선시했기 때문에 중국 축구가 발전할 큰 기회라고들 믿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알리바바 같은 거대 기업의 후원으로 중국 내 축구 붐이 이어졌고, 2018년까지 대규모 투자는 성과를 거뒀다. 약 1억8700만 명의 축구 팬이 있었고, 각 중국 슈퍼리그 팀 경기장에는 2만4000명가량의 관중이 모였다. 그해 중국 슈퍼리그는 33억4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중국 축구가 안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에서 중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 실망하는 중국 축구팬들. 로이터연합뉴스
축구는 배드민턴, 탁구, 농구와는 달랐다. 중국에서 아무리 축구 인기가 높아진들,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여전히 관심이 적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 꼽는다.

먼저, 자녀가 축구 선수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부모들의 반감이다. 20년 동안 중국에 거주한 웹사이트 ‘와일드 이스트 풋볼’ 창립자이자 편집자인 캐머런 윌슨은 “중국 축구는 단순히 축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사업, 그리고 사리사욕에 관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생태계가 수익과 관련이 없는 것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축구장이 거의 없고 놀 시간도 거의 없는 밀집된 도시 지역의 숙제 더미에 치여 사는 아이들에게 축구는 우선순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윌슨은 “한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도 전통적 축구 강국은 아니지만, 이들은 자국 리그를 강하게 발전시켰다.”며 “중국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부패와 지출 급증, 외국인 감독들의 소동, 그리고 축구보다 우선시되는 금전적 이익과 후원자들로 채워져 왔다”고 꼬집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리그를 아예 중단시켰고, 리그를 휴가지로 이용해 온 외국인 코치와 노령 외국인 선수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낭비했다. 일례로 2016년 아르헨티나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즈는 상하이 선화와 2년 동안 40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는 겨우 4골을 넣었고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소년 시절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갔다. 나중에 그는 상하이에 있을 때를 “중국 휴가(China vacation)”이라고 돌아봤다.

중국에서 축구가 발전하는 못하는 두 번째 이유로는 중국의 하향식 관료제가 꼽힌다. 윌슨은 중국축구협회가 중국 스포츠 총국의 한 기관이라며, 다른 나라처럼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엠리옹경영대학의 사이먼 채드윅 교수는 “중국 축구에 대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정부와 국가 당국의 끊임없는 개입”이라고 말했다. 채드윅 교수에 따르면 2015~2018년 중국의 외국인 선수 영입은 절정에 달했지만 최근 몇 년 새 그 열기가 식었다. 당국이 외국인 고용으로는 중국 축구의 질이나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2020년 중국축구협회는 외국인 축구 선수에 대한 연봉 상한선을 당시 해외 리거들이 받는 것보다 훨씬 낮은 연간 441만 달러(약 58억 원)로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외국인 선수들의 중국 축구팀 합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윌슨은 “FIFA 규정은 축구협회가 정치적 간섭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축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축구인이 아니다. 그들은 게임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과 관리자.”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축구몽 이대로 물거품되나

▲중국 어린이들이 2022년 5월 25일 중국 만리장성에서 열린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행사에서 월드컵 트로피 복제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2년 10월 6일 시점 중국의 FIFA 랭킹은 79위.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가봉보다 두 계단 높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보다 두 계단 낮은 수준이다.

순위는 앞으로도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축구 후원사들이 재정난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중국 축구에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Evergrande)은 중국 슈퍼리그 8회 챔피언이자 아시안컵 2회 우승자인 광저우FC의 주요 후원자였다. 또 재능 있는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위해 매머드급 축구센터도 설립했다. 그러나 현재 파산 위기에 처했다.

다른 최고 축구팀인 장쑤FC는 지난해 후원사인 거대 소매업체 쑤닝이 자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자금줄을 잃었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 국내 프로축구 구단의 절반 이상이 재정난으로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슈퍼리그의 2022시즌을 앞두고 또 다른 상위 팀인 칭다오FC가 재정 위기로 인해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정권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축구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가 카타르 월드컵을 즐기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목인 월드컵 기간에 대도시 번화가 술집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한다.

▲27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E조 2차전 당시 관중석에 마스크를 한 관객은 찾아볼 수 없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 중계 방송까지 검열한다. 월드컵 경기 중계 장면에서 ‘노마스크’ 일색인 관중석 장면이 나오면 이를 삭제하거나 블러 편집해 내보내는 식이다.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자유로운 상황을 보고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에 반발할까봐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부의 꼼수다.

이미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과 카타르가 같은 행성 맞아?” “세계 한쪽에선 월드컵이라는 카니발이, 다른 한쪽에서는 5일동안 공공장소에 가지 말라는 규칙이”라는 등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더 나아가 봉쇄 정책 탓에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인명사고가 나자 이를 계기로 봉쇄 불만 시위가 ‘백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이럴 수록 중국 축구의 경기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면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 또 중국의 경기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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