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프로들이 FTX의 ‘봉’이 된 이유는?

입력 2022-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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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몰락 신호 계속 나오고 있었어
투자회사들 왜 신호 놓쳤나...‘과한 자신감’
VC의 투자 관행도 문제

▲가상화폐 거래소 FTX 로고와 샘 뱅크먼-프리드의 얼굴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산 가치 320억 달러(약 43조4592억 원)로 평가되던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소 FTX를 파산으로 이끈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가 투자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뱅크먼-프리드를 손가락질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FTX의 위험신호를 감지하고서도 외면한 투자 산업 생태계 그 자체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투자회사들의 내놓으라 하는 프로들이 FTX 위에 떠 있던 위험 신호를 놓친 장본인들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사업 가능성을 판단하는 대가로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헤지펀드와 벤처캐피털(VC) 그리고 기타 기관투자자들이 뱅크먼-프리드에 돈을 쏟아부었다.

서드포인트, 세쿼이아캐피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소프트뱅크그룹, 타이거글로벌, 온타리오주 교직원 연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FTX의 파산은 예상 가능했다. 계속해서 주의 신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뱅크먼-프리드는 4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사업 대부분이 투자 사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반론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시 “많은 가상화폐는 가치가 제로(0)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뱅크먼-프리드는 앞서 지난해 2월 VC의 대명사 세쿼이아와 화상으로 투자 미팅을 하는 도중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쿼이아는 오히려 몇억 달러의 출자를 논하는 중에 게임을 하는 그의 행동을 비범하게 봤다.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2월 9일 미국 상원에서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세쿼이아는 FTX의 몰락으로 2억14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세쿼이아는 9일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모든 투자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와 감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브렛 해리슨 당시 FTX 미국지사 사장은 “고객의 자산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 은행 계좌에 있다”고 트윗을 날렸다가 FDIC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바로 해당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FTX의 결함은 적절한 실사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연방파산법원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FTX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존 J. 레이 3세는 FTX의 신용위기를 촉발했던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가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회계 감사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알라메다의 모든 계좌를 정확히 기재한 명단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들이 눈을 뜨고 코를 베인 건 바로 ‘불신의 유예’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처음 고안한 불신의 유예는 어떤 대상이 가짜임을 알거나 믿을 수 없더라도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진짜인 것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가상화폐 붐 속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자 투자가들이 과한 자신감을 얻기에 이르렀다. 실제 가치가 없는 자산을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는 것과 같다.

뱅크먼-프리드는 VC가 투자처를 고르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VC는 동업자들의 화제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주목하는 회사를 알게 되면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공포감인 포모증후군(FOM·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혀 자신도 뛰어들 방법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의 수수료가 커질수록 이들이 현실을 외면하는 횟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WSJ는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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