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회사들 왜 신호 놓쳤나...‘과한 자신감’
VC의 투자 관행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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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뱅크먼-프리드를 손가락질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FTX의 위험신호를 감지하고서도 외면한 투자 산업 생태계 그 자체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투자회사들의 내놓으라 하는 프로들이 FTX 위에 떠 있던 위험 신호를 놓친 장본인들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사업 가능성을 판단하는 대가로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헤지펀드와 벤처캐피털(VC) 그리고 기타 기관투자자들이 뱅크먼-프리드에 돈을 쏟아부었다.
서드포인트, 세쿼이아캐피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소프트뱅크그룹, 타이거글로벌, 온타리오주 교직원 연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FTX의 파산은 예상 가능했다. 계속해서 주의 신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뱅크먼-프리드는 4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사업 대부분이 투자 사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반론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시 “많은 가상화폐는 가치가 제로(0)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뱅크먼-프리드는 앞서 지난해 2월 VC의 대명사 세쿼이아와 화상으로 투자 미팅을 하는 도중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쿼이아는 오히려 몇억 달러의 출자를 논하는 중에 게임을 하는 그의 행동을 비범하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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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브렛 해리슨 당시 FTX 미국지사 사장은 “고객의 자산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 은행 계좌에 있다”고 트윗을 날렸다가 FDIC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바로 해당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FTX의 결함은 적절한 실사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연방파산법원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FTX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존 J. 레이 3세는 FTX의 신용위기를 촉발했던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가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회계 감사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알라메다의 모든 계좌를 정확히 기재한 명단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들이 눈을 뜨고 코를 베인 건 바로 ‘불신의 유예’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처음 고안한 불신의 유예는 어떤 대상이 가짜임을 알거나 믿을 수 없더라도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진짜인 것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가상화폐 붐 속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자 투자가들이 과한 자신감을 얻기에 이르렀다. 실제 가치가 없는 자산을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는 것과 같다.
뱅크먼-프리드는 VC가 투자처를 고르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VC는 동업자들의 화제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주목하는 회사를 알게 되면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공포감인 포모증후군(FOM·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혀 자신도 뛰어들 방법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의 수수료가 커질수록 이들이 현실을 외면하는 횟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WSJ는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