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발령→통상해고…대법 “근무능력 개선기회 충분히 줘야”

입력 2022-10-18 12:00수정 2022-10-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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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등급에 3개월 대기발령 후 취업규칙 따라 ‘자동해고’
大法 “근무성적 부진정도 구체적 심리해야…해고 ‘위법’”
“낮은 평가등급 받아 해고는 정당” 1·2심 판결 파기환송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대기발령 후 보직을 부여하지 않다가 취업규칙상 자동해고 조항에 따라 해고한 것은 ‘인사권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에게 교육과 전환배치 등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8일 대우조선해양 전 직원 A(54)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등 상고심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가 해고된 지 7년3개월 만의 대법원 결론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법원에 따르면 1997년 4월 입사해 2015년 7월까지 18년여 간 근속한 A 씨는 2015년 1월께 ‘2014년 하반기 인사고과평가’에서 관리직 254명 중 253위로, 하위 5%에 해당하는 최하위 고가 D등급을 받았다. 하위직이 상급자를 평가하는 ‘다면평가’ 결과도 최하위여서 A 씨는 기술·생산본부그룹 35명 중 33위를 기록했다.

이후 대우조선은 조직개편을 단행한 뒤 인사위원회를 열고 그 해 3월 1일 A 씨를 포함한 4명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A 씨는 인사총무팀 소속으로 바뀌었다. 이 대기발령 상태에서 업무 과제를 줬는데 그 과제의 평가 결과 역시 5단계(S~D) 가운데 D등급, 그리고 또 수행 과제를 부여했는데도 업무 부적격에 해당하는 31점을 받게 된다.

회사는 대기발령 후 무보직으로 3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사원이 무보직으로 3개월이 경과했을 때는 해고한다’는 취업규칙 규정에 의거 해고를 통보한다. 사측의 대기발령부터 해고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6개월.

A 씨는 ‘대기발령’에 대한 구제를 신청했지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기각됐다. ‘해고’ 또한 부산노동위에서 구제신청이 기각되자 A 씨는 2016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18년 넘게 일했는데 평사원 강등…저성과자 낙인→해고통보

재판에서는 저성과자 대기발령의 정당성과 대기발령 동안 최하위 평가로 인한 해고의 정당성이 쟁점이 됐다.

1‧2심은 “정당한 대기발령”이라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우조선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감안됐다. 재판부는 “대기발령은 조직개편 및 인사고과평가에 따른 것으로서 인사권 행사의 재량권 범위 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법원의 심리가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단지 대기발령이 정당하고 대기발령 기간에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은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꼬집었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연합뉴스)

현대重 ‘정당’ vs 대우조선 ‘위법’…대법 “개별 사안, 달리 판단”

대법원은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부진이 다른 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향후에도 개선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를 심리해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기존 법리를 재차 확인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2월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취업규칙에 저성과자 해고 조항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해고가 가능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때 대법원은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 등에서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부진에 따른 대기발령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도록 보직을 다시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해고한다는 규정을 두고 사용자가 이러한 규정에 따라 해고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기발령이 정당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해고까지 정당한 것은 아니고, 대기발령이 해고로 이어진 경우에는 해고의 정당성을 별도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부진함을 이유로 한 해고의 유‧무효는 이 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개별 사안에서 달리 판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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