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대일로 2.0’ 나선다…‘부채의 덫’ 대신 신중한 대출로

입력 2022-09-27 16:07수정 2022-09-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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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인플레이션 등에 해외 대출 60% 부실
개도국 신규 대출 엄격히 심사하는 방향 전환
그간 거부하던 ‘파리클럽’과의 협력도 모색

▲중국 칭다오항에서 지난달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향하는 고속철도 열차가 선박에 실리고 있다. 칭다오/신화뉴시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국의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 프로그램이 전면 개편을 앞두고 있다. 그간 개발도상국들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던 중국이지만, 많은 대출이 부실화하고 개발 프로젝트들이 중단됨에 따라 당국이 사업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내부 회의에서 ‘일대일로 2.0’이라는 이전보다 보수적인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계획이 확정되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이전보다 엄격한 심사·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그간 중국은 거의 10년에 걸쳐 일대일로를 통해 개도국들을 지원해 왔다. 특히 광산과 철도 등 개도국들에 필요한 인프라 건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경제적 유대감을 확장했다.

2013년 전까지는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투자 규모를 기록했지만, 이후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졌고 그 결과 중국은 약 150개국에 1조 달러(약 1423조 원) 상당의 대출을 제공하며 공식적으로 세계 최대 채권국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에 그간 중국의 지원을 받았던 개도국들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황도 달라졌다. 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부실 채권이 됐고 곳곳에서 수많은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세바스티안 혼과 카르멘 라인하트 등 글로벌 부채 이슈에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현재 중국 해외 대출의 약 60%가 재정 위기에 처한 국가들로 향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공격적인 대출 관행을 ‘부채의 덫’이라고 지적하며 반발하면서 중국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상황이 악화하자 중국 정부는 지난 연말부터 일대일로 수정 조짐을 보였다. 과거 일대일로를 “세기의 프로젝트”라고 평했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회의에서는 “일대일로와 관련한 국제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며 “위험 통제를 강화하고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변화 분위기는 언론 노출에서도 감지된다. 조지메이슨대 메르카투스센터의 중웨이펑 선임 연구원은 “과거 중국은 대출 수혜국의 경제적 이점을 선전했지만, 이제는 위험 관리와 국제 협력 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이 진로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중국 은행들은 기존 대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개도국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을 크게 줄인 상태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 경제 위기에 빠져 있는 러시아와 스리랑카, 이집트 일대일로 사업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이 포함된 대규모 글로벌 채권단 연합인 ‘파리클럽’과 협력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최근엔 협력하기 시작했다. WSJ는 “중국이 파리클럽과 주요 20개국(G20)을 통한 ‘공동 채권 프레임워크’에 합류하려는 이유는 다른 채권단과 협력하면 자국 이익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며 “하지만 신중해진 대출은 일부 국가에서 중국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 국제무대에서 그만큼 영향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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