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쇳밥일지’ 천현우 “글쓰기로 노동자 현실 알리는 역할하고 싶어”

입력 2022-09-0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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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 현실 담은 ‘쇳밥일지’…2022년 버전 ‘전태일 평전’
문재인 전 대통령 “이 시대 청년 노동자 목소리 담았다”
지난달 23일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올라

▲5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만난 '쇳밥일지'의 천현우 작가. (송석주 기자 ssp@)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라고 한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천현우 작가의 노동 에세이 ‘쇳밥일지’ 역시 그러한 불길을 동력으로 삼은 책이다. 이 책에는 평범한 일상도 쉽게 허락받을 수 없었던 어느 청년공의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다.

‘쇳밥일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책은 한숨과 희망이 교차하는 청년 용접공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이 시대 청년의 목소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픽’ 이후 이투데이는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천 작가를 인터뷰했다.

5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 작가는 “대통령의 언급에 설레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짧은 소감을 전했다. 이어 “당시 대통령께서 소득주도성장과 주 52시간 근무제를 통해서 노동자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찾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완벽히 구현되진 못했다. 목표는 선했지만, 실제 노동 현장은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대통령은 나를 포함해 이 책에 나오는 처절했던 노동자들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았던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쇳밥일지’에는 천 작가가 10년 넘게 직접 경험한 공장 노동의 극악한 현실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집필의 대원칙을 ‘재미’로 꼽으며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천 작가는 “기존의 노동 에세이는 대개 생생한 경험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재미를 못 느꼈다. 자기가 부당하게 당한 일에 너무 몰입해서 쓰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안타깝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러면 확장성이 없다”며 “이 책은 무조건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청년공이었던 천 작가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 것은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다. 이 책은 양 교수가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천 작가는 양 교수를 찾아가 자신이 처한 노동 현실을 알렸다. 양 교수는 천 작가와의 이야기를 정리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고,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그 글을 공유하면서 사연은 유명세를 탔다.

누가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는 공론은 허상일 뿐.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천 작가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과장님이 큰 철판에 깔리면서 결국 발을 절단하셨다. 그걸 보면서 ‘나는 그저 운이 좋았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제 더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거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공장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설명했다.

천 작가처럼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꿈이 아닌 생(生)을 이루기 위해 쓴다. 고고한 작가를 염원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 생존하고 싶어서 쓴다. 꿈이 아닌 생을 위한 글쓰기는 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을 순 있지만 존엄하다. 존엄한 글은 문학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현실의 밑바닥을 흐른다. 그 흐름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노조 아재들이 이게 안 돼. 맨날 머리띠 매고 메가폰 잡고 소리만 치잖아. 간절한 건 이해하겠는데 촌스러워. 그림이 너무 구리잖아. 우리가 그리 욕해도 결국 가진 놈들은 먹물이잖냐? 그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미라는 게 또 따로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

‘쇳밥일지’의 가장 큰 특징은 당사자성에 있다. 천 작가는 자신의 당사자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계층을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간 언어’ 구사 실력이 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자적이라는 게 대단한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이 능력으로 다리를 놓고 싶다.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천 작가는 “산재 기사는 대개 비극적인 순간만 조명한다. 왜 그런 산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산재 기사에 앞뒤 맥락을 추가해서 왜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인 관점에서 밝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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