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태풍 '힌남노'에 맞벌이 부부가 우는 이유

입력 2022-09-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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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있다. 재작년에 6개월 살기로 내려갔다가 "여기서 살고 싶다"는 딸의 말에 아예 터를 잡았다. 집을 구하고 직장을 옮기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1년 남짓 지낸 제주 살이가 아직까지는 만족스럽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역이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었다는 소식에, 평생을 도시서만 산 친구가 어찌 버틸까 걱정이 돼 안부 전화를 걸었다.

"비가 많이 오긴 하는데 아직은 괜찮아. 그보다 당장 내일 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더 걱정이다."

휴교령이 떨어지면서 유치원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지붕이 뜯기고 사람이 날아갈 정도라는데 재택 안 하느냐 되물었더니 '내일 조심해서 출근하라'는 상사 문자를 받았단다.

아이들 아빠는 중요한 미팅이 잡혀있고, 도움을 청할 친척도 근처에 없고, 방학 내 아이를 봐주던 돌봄 도우미는 난색을 표하고. 긴급 보육을 보내려니 'OO이 한 명만 오네요'란 선생님의 말이 마음에 걸린단다.

친구의 사정이 속상해 그만 "거길 왜 갔어"란 말을 내뱉어 버렸다. 태풍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한 친구에게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ㆍ유연근무가 확산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슴까지 차오른 빗물을 뚫고 회사에 가는 'K-출근러'다.

그나마 대기업은 주 4일제·단축근무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대체 인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높은 집값, 낮은 임금, 과한 교육열. 그 가운데 '애 키울 시간이 없다'는 게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쁘다. 선선한 가을 바람 맞으며 산책하는 것 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나마 근처에 사는 시어른들이 도와줘 근근히 버티고 있다. 어느샌가 '내 시간을 잃었다'는 생각을 갖는 건 사치로 느껴진다.

'돈만 퍼준' 그간 한국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 2020년 기준 0.84명인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0명으로 내려앉고, 최악의 시나리오(저위 추계)로는 2025년 0.61명으로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연근무=엄빠(엄마아빠)만의 제도'란 낙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제도화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는 18살 미만 자녀를 둔 사람에게는 법률에 따라 출근 근무를 강요할 수 없고, 본인이 원하면 재택근무를 보장해야 한다. 무상급식과 교육의 효과가 더해지긴 했지만 그 결과 칠레의 출산율은 반등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고령화와 맞물려 다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노동 환경이 변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아이 울음소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삶의 여유를 찾아 제주에 갔지만 둘째 아이 출산은 진작에 접었다는 친구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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