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종식 주역’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사망...향년 91세

입력 2022-08-3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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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정책으로 민주화 이끌어
이전 소련 지도자와 달리 동유럽 군사장악 포기...베를린 장벽 붕괴
노벨평화상 받았지만, 내부선 소련 붕괴 주역 비판

▲미하일 고르바초프(왼쪽) 전 소련 대통령이 1987년 12월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이자 냉전 종식의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91세.

CNN과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해 타스통신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초기 의사들의 권유로 이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었으나 사인이 코로나19는 아니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85년 54세 나이로 소련 최고 지도자 직인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한 이후 7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집권 기간 역사적 격변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는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양대 정책으로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를 이끌었다.

역대 소련 정권과 달리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동유럽에 대한 군사적 장악을 포기하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했다. 이는 동유럽 공산국가 대부분이 1991년까지 일당 독재 체제를 포기하고 선거를 치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40여 년간 지속했던 동·서 냉전 구도도 종식됐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미국과 1987년 중거리핵전력 조약(INF)을 체결했고 1991년에는 아버지 조지 H.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미·소 양국의 전략핵무기를 대규모 감축하기로 한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I)에도 서명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대거 참여하는데 고르바초프가 큰 힘을 보탰다. 1990년 6월 미국 뉴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났고, 같은 해 9월에는 한-소 수교를 체결했다. 이 해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냉전 구조를 깨뜨리고 평화 정착에 앞장선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몰락의 길은 굴욕적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냉전 시대를 종식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정작 소련 내부에서는 한때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을 해체시킨 인물로 비난을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대통령제를 도입, 1990년 소련 최초의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지만 소련은 냉전 구도 해체로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했고, 군부의 쿠데타 시도, 경제난까지 겪으며 정국 혼란까지 심화했다.

결국, 1991년 12월 소련은 해체됐고, 소련 붕괴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그는 소련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퇴임 후 1996년 다시 대권에 도전했지만, 득표율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그는 2000년대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러시아 정권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갔다. 이후 고르바초프 재단을 만들어 해외 강연과 환경보호 운동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고르바초프 재단은 성명을 내고 빠른 전쟁 중단과 평화 협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신뢰받고 존경받는 지도자"라며 "냉전을 종식하고 철의 장막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자유 유럽을 위한 길을 열었다. 그의 유산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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