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가 김훈 “억누름으로써 더 깊은 표현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입력 2022-07-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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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문학동네)

김훈은 최근 출간한 자신의 두 번째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에 대해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김훈이 이웃의 마음으로 썼다는 이 소설집에는 출소자, 범죄자의 어머니, 독거노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그들도 이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오랜 시간 바라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이웃 말이다.

돌이켜보면 김훈의 역사 소설도 그랬다. 거기에는 웅장한 역사의 흐름보다는 그 흐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고 버티는 이웃, 즉 인간이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간을 마주하는 일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다. 저만치 혼자서. 때로는 함께.

출간 기념 인터뷰를 위해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사담(私談)이라도 좋으니 기존에 하지 않았던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한참 고민했다. 그 고민이 유효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소설집 제목을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서 가져왔다고 들었다. 두 작품 모두 ‘혼자’라는 감각이 중요해 보인다. 당신은 지금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혼자인가?

“나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놀란다. 김소월은 이 시에서 ‘산다’, ‘운다’, ‘피다’, ‘지다’라는 자동사 네 개와 ‘산’, ‘꽃’, ‘새’라는 명사 세 개로 자연과 시간이 순환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존재(꽃)는 그 순환의 질서 속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떨어져서 함께 가고 있다. 이 간단한 단어 일곱 개가 보여주는 조화는 한국어의 절정이다. 김소월은 힘들이는 기색이 전혀 없이, 마술사가 손바닥에서 새를 꺼내 보이듯이, 그 절정을 보여준다. 내가 빌려서 쓴 ‘저만치 혼자서’라는 제목의 의미는 이 세계와의 물리적 거리도 아니고 심리적 거리도 아니다. 나의 제목은 이미지이다. 나는 이 이미지가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환경을 모두 포함하면서 그 제약을 넘어서기를 바란다.”

△이번 소설집은 상실을 견디고 버틴 인간들이 생을 대하는 처연하면서도 담담한 태도에 관한 내용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경계에서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거로 보인다. 인물들을 이같이 설정한 이유가 있나?

“나는 의도적으로 소외당한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 인물들은 스스로 내 소설 속에 걸어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맞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이들은 나를 찾아올 것 같다.”

△'손'이라는 단편은 임신 중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배우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에도 임신 중절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이 영화를 봤나?

“'손'에서 임신중절에 대한 묘사는 길지 않다. 그보다는 아이를 지운 여자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생명체에 대해서 느끼는 슬픔과 죄의식을 썼다. 나는 이런 글을 몇 줄 쓰고 나면 지친다. 영화 ‘브로커’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내 딸이 좋은 영화라고 해서 한번 보러 가려고 한다.”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본래 그러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라는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이 문장을 쓸 때,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내가 쓴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다시 지우려는 갈증이 이런 문장을 쓰게 하는 모양이다. 나 자신의 분열의 자취이다. 그러나 지운 흔적이 남아 있어서, 한번 쓴 문장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김소월처럼 쓸 수는 없다.”

△'영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 단편이다. “저녁이 흐르고 또 익어서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말라죽은 자리를 어둠이 차지했다”가 특히 그랬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과 공간은 언제, 어디였나?

“시간이 일련의 흐름으로 이어져서 ‘지속’을 이루지 못한 채, 파편으로 흩어져서 말라 죽어버리고, 시간이 창조를 위한 토대가 되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는 불임의 모습을 한 줄로 짧게 써보려고 했던 문장인데,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는 인상에 남은 시간과 공간이 없다. 모든 것이 마음속에서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에 새것들이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역사 소설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자'에서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 관해 쓴 부분을 읽으면서 묘한 재미를 느꼈다. 취재를 위해 한국사 시험 문제를 직접 보거나 풀어봤을 것 같은데.

“9급 공무원 시험 문제집을 구해서 읽었다. 재벌 회사의 입사 시험 문제와 적성검사 시험 문제집도 읽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처럼 수모를 겪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평론가들이 당신의 문학에 대해 ‘정확한 언어 구사력’, ‘단문의 미학’, ‘감정이 배제된 서늘하고 건조한 문장’ 등으로 표현한다.

“문체는 가수의 발성법이나 악기의 음색이나 화가의 터치(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논리나 사유의 작용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몸의 떨림과 관련되는 사태이다. 그러므로 문체는 나의 팔자이다. 억누름으로써 더 깊은 표현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최근에 자주하는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고민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 많이 다른가?

“젊은 시절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이 똑같다. 약육강식이 인간의 불변하는 운명이라는 사태는 불을 보듯 명확하고,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에필로그에서 “이 세상의 수많은 손잡이에 남아 있는 손들의 자취와 표정에 대해서 나는 쓰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어떤 손을 가진 인간인가?

“나는 늘 만드는 사람의 손을 동경하고 있었다. 이제는 쓰다듬는 사람의 손을 가지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나는 늘 미리 설정한 계획이 없다. 되는대로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다.”

▲소설가 김훈.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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