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약사회 “약자판기 도입 시 오투약·부작용 우려”
대한약사회가 자판기에서 일반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일명 ‘약자판기(화상투약기)’의 규제샌드박스 심의 진행이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는 지난 19일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국민 건강권 사수를 위한 약 자판기 저지 약사 궐기대회’를 열고 약자판기 도입 시도 중단과 규제완화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약사회는 영리 목적으로 개발된 약자판기는 의약품 오·투약을 불러올 수 있고, 혁신 기술에 기반하지 않았음에도 첨단기술로 실증특례 적용 대상이 된 것은 의약품을 공산품처럼 바라보는 기업의 논리만 강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광훈 약사회장은 “약자판기는 본질적으로 특정 기업의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약자판기의) 심야시간 의약품 구입 편의성 증대는 국민을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어 최 회장은 “국민 건강과 의약품을 단순한 전시성 행정으로 영리 목적의 희생물이 되도록 외면할 수 없었다”라며 “규제완화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약사회가 제기한 의약품 자판기 논란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사회에 따르면 2012년 쓰리알코리아가 기계를 통해 화상상담과 일반의약품 구매가 가능한 약자판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2013년 보건복지부, 2014년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 약사법 위반으로 운영이 무산됐다.
이어 2015년 국무총리실 산하 신산업투자위원회에서 약자판기 설치 허용 방안이 규제완화 대상으로 논의됐다. 이어 그 해 6월27일 정부입법으로 약자판기 도입을 위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약자판기 논란은 2019년 규제샌드박스 특별법 시행으로 다시 불거졌다. 약자판기 개발업체가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신청해서다. 이후 개발 업체는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대상으로 서울행정법원에 ‘부작위 위법확인소송'(행정기관이 일정한 처분을 해야 하는 법률상 의무를 충족시키지 못해 이를 위법행위로 확인해 줄 것을 요구)을 제기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열린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이하 심의위)에서 차기 회의에서 재논의를 전제로 공식 안건 상정이 보류됐다.
약사회에 따르면 소송의 경우 지난 5월말 1차 공판이 진행됐고, 7월 8일 2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따라서 과기부는 2차 공판 이전 약자판기 허용 안건을 심의위에 상정하겠다는 입장으로, 20일 오후 안건이 상정돼 논의가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에 약사회는 1인시위와 궐기대회 등을 통해 약자판기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20일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오늘 규제샌드박스 회의에도 안건으로 상정되는 것으로 안다. 그 어느 국가, 정부도 산업 규제완화를 국민의 안전과 건강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라며 “심의위 안건 상정과 결과에 따라 향후 대응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약사회는 약 자판기로 인해 무분별한 사용과 의약품 부작용이 양산될 것이라며, 규제샌드박스라는 포장으로 도입이 추진되는 것은 국민 건강과 안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19일 열린 궐기대회에서 박정래 충청남도약사회장은 “약 자판기는 혁신적 기술과 기술 집약화가 없는 단순한 자판기임에도 첨단기술로 실증특례 적용 대상이 됐다”면서 “편의성과 상업성에만 초점을 맞춘 약 자판기 도입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심야시간 약 사용 등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 확대를 위해 공공심야 약국 제도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