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취화선’ 광고비는 얼마였을까? 태흥영화사 기획전의 흥미로운 정보들

입력 2022-05-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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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예고 배정표”

매체명 XX일보. 게재일 4/27 토. 6*18(사이즈) 5,940,000(원).

매체명 XX일보. 게재일 5/2 목. 5*37(사이즈) 10,175,000(원).

2002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홍보를 위해 제작사 태흥영화사가 당시 일간지에 지불한 광고 단가표다. ‘취화선’과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199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은 태흥영화사가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흥미로운 자료다.

▲'취화선'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9월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특별 기획전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사 1984-2004'에서는 1990년대 전후 충무로의 영업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태흥영화사의 미공개 자료를 다수 만날 수 있다. 전시기획을 담당한 조소연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차장은 13일 이투데이와 만나 “태흥영화사로부터 2천여 점이 넘는 자료를 기증받아 몇 년 동안 분류 작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태흥영화사는 몰라도 ‘서편제’는 안다”

“태흥영화사는 몰라도 ‘서편제’는 안다”는 조 차장의 말처럼, 태흥영화사는 1993년 제작한 ‘서편제’로 서울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최초의 기록을 쓰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영화제작사로 이름을 떨친다. 그해 열린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연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활약한 건 물론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기획전에서는 당시 태흥영화사가 정부와 주고받은 관련 문서 자료도 전시된다.

▲'서편제'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당국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시기 영화를 제작했던 태흥영화사는 여러 고초도 겪었다. 대표적인 게 첫 작품으로 낙점했던 김지미 주연의 ‘비구니(1984)' 제작 중단 사건이다. 이미 촬영을 20%가량 진행했던 시점 조계종의 압박과 정부의 개입으로 어쩔 수 없이 작업을 멈추면서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기획전에서는 당시 촬영한 37분여간의 영상을 소형 스크린 재생 형식으로 공개하는데, 비구니 역을 맡은 김지미가 한겨울의 폭포에 전라로 뛰어드는 장면이 포함됐다.

▲미완성된 임권택 감독 '비구니' 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이후 태흥영화사는 ‘무릎과 무릎사이(1984)', ‘뽕(1985)', ‘어우동(1985)' 등 성적인 코드를 앞세운 작품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손해를 만회한다. 조 차장은 “단순한 애로 영화가 아니었다. 의상과 소품에 제작비를 과감하게 투자해 기존 영화들과는 ‘때깔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태흥영화사는 해외 영화제 진출을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고 의미를 짚었다.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 임권택 감독과 '서편제', '장군의 아들' 등 11편 제작
'춘향뎐'으로 한국 영화 최초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태흥영화사의 해외 진출 시도를 이야기하면 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제는 고인이 된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와 여전히 영화계 행사를 종횡무진하는 임권택 감독 사이의 인연이다. 두 사람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2000)', ‘취화선’ 등 총 11편의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특히 두 사람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춘향뎐’은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공식 초청을 받지는 못했지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 출품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있기 전에 태흥영화사 작품들이 칸영화제에 입성하고 아카데미 문을 두드렸던 셈이다.

기록할 만한 성과를 거둔 건 ‘취화선’이다. 2002년 열린 제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수상에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도 숨어있다. 이태원 대표는 당시 여러 취재원을 동원해 ‘취화선’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피아니스트(2002)'가 수상에 오르자 뒤늦게 수상작이 바꿔치기 됐다며 실망했다고 한다.

▲태흥영화사 고 이태원 대표 (한국영상자료원)

태흥영화사는 신규 감독 발굴에도 힘썼다.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 등을 제작했다. 얼마 전 급작스러운 비보를 알린 배우 강수연의 출연작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폐업에 이르기까지 태흥영화사는 총 36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마지막 작품은 2004년 개봉한 조승우 주연의 ‘하류인생’이다. 대기업이 충무로에 진출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기획, 투자하기 시작하자 이태원 대표는 제작자의 주도적 판단으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저물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 차장은 “태흥영화사와 이태원 대표는 제작사 주도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라고 이번 기획전의 의미를 짚었다.

▲정일성, 임권택, 이태원 (왼쪽부터) (한국영상자료원)

기획전에는 태흥영화사가 가장 흥했던 시절의 사진도 걸려있다. 한 장은 ‘취화선’ 칸영화제 수상 당시 이태원 대표,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3인이 함께 촬영한 것이고 또 다른 한 장은 ‘서편제’ 제작팀이 한 자리에 모인 단체 사진이다. 두 장 모두 이태원 대표의 사무실에 걸려있던 것이라고 한다.

특별 기획전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사 1984-2004'는 오는 9월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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