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지하 시인 발인…부인 묻힌 흥업면 선영에 '영면'

입력 2022-05-1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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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 마련된 시인 김지하의 빈소(연합뉴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197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11일 영면에 든다.

지난 8일 81세의 일기로 타계한 김지하 시인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9시 강원 원주시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된다.

발인식에는 고인의 두 아들인 김원보 작가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생전 김 시인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한다.

유해는 오전 10시 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뒤 부인 김영주 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모셔진다.

고인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의 외동딸이자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씨와 1973년 결혼했다. 2019년 11월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씨와는 3년여 만에 다시 만나 한 공간에서 영면에 든다.

10여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한 김 시인은 지난 8일 오후 4시 81세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고 눈을 깜빡,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미소를 짓고서 가족들과 작별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해 원주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중동고를 거쳐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1970년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 '오적'으로 구속되는 필화를 겪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는 등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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