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 지난달에도 약 5조 원가량을 쏟아내면서 외인의 보유 비중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다만 외인은 ‘셀 코리아’ 기조 속에서도 호실적을 달성한 자동차, 정유, 통신 관련 주들을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선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기업들의 견조한 실적이 외인 수급 개선의 기반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지난 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6459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2월 7982억 원을 사들이며 순매수로 전환했던 외인은 3월(5조1173억 원)과 4월(4조9426억 원) 연달아 물량을 쏟아냈다.
외인 코스피 지분율도 13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외인의 전체 시가총액 대비 코스피 보유량 비중이 지난달 28일 기준 30.90%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국내 증시 전체 시총 2017조 원 중 외인이 658조 원을 보유했다.
시총 상위권 종목들은 외인의 매도 폭탄에 허덕이고 있다. 4월 한 달간 코스피 시총 1위 삼성전자와 5위 삼성전자우를 각각 3조4242억 원, 5268억 원 순매도했다. 시총 2위 SK하이닉스(5085억 원)와 시총 6위 NAVER(4205억 원)도 대거 팔아치웠다. 이외에 HMM(2367억 원), 삼성전기(1259억 원), LG디스플레이(1180억 원), 카카오뱅크(896억 원) 등 대형주 매도도 이어졌다.
외인은 하락장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낸 ‘알짜배기’ 종목들에 화력을 집중한 것으로 파악된다. 4월 한 달간 외인은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낸 기아(2596억 원)와 현대차(1062억 원)를 합쳐 260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사태발 공급망 불안 리스크가 커지자 현대차(2658억 원), 기아(2260억 원)를 대량 순매도한 것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기아는 1분기 매출 18조3572억 원, 영업이익 1조6065억 원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49.2% 늘었다. 이는 분기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이다. 현대차는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6.4% 증가한 1조9289억 원을 달성, 2014년 2분기(2조872억 원) 이후 약 8년 만에 최대치를 달성했다.
외인은 SK텔레콤(2394억 원), KT(1451억 원) 등 통신주도 대거 사들였다. 국내 통신 3사의 올해 실적이 최근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거란 증권가 전망에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 정제마진 등 수혜를 입은 S-Oil(1777억 원), SK이노베이션(931억 원) 등 정유주와 리오프닝 수혜가 예상되는 대한항공(7667억 원)도 외인 순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지영 연구원은 “2009년 4월과 2016년 1월 코스피 외인 지분율이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다”며 “당시 외인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한 공통 유인은 원·달러 환율의 안정과 국내 기업들의 분기 호실적”이라고 전했다.
이어 “환율이 현 수준에서 박스권 흐름만 보여 환 변동성은 제한될 전망”이라며 “1분기 주요 기업들의 호실적으로 이익 모멘텀 회복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외인의 수급 여건을 호전시킬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