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發 에너지시장 격변] 러-우크라 전쟁, 세계 에너지시장에 준 중대한 교훈

입력 2022-03-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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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러 에너지 제재서 운신의 폭 좁아
에너지 자립 아닌 안보 차원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
에너지 안보 핵심은 다양성
수입선 다각화 더불어 에너지원 포트폴리오 재구성도 고려해야

▲사진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가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화재가 일어나고 있다. 자포리자/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치솟았다.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위기 의식이 더 높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단순한 에너지 자립이 아닌 에너지 안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미국 CNBC방송이 전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사회가 대러 제재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였다. 러시아 은행 제재에 이어 금융 핵폭탄이라 불리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퇴출 카드도 꺼냈다. 이례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대러 제재에서 ‘찰떡’ 공조를 발휘하고 있지만, 에너지 부문에서는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러 제재의 최후 수단인 러시아 석유·천연가스·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난방, 이동, 전력, 산업을 위한 에너지 공급에 있어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당장 없다”면서 “대안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하룻밤 새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즉시 중단하면 엄청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 ‘운신의 폭’이 좁아진 배경에는 에너지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의 43.4%를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2위 노르웨이산은 20%로 1위 러시아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3위는 알제리로 11% 정도다.

2000년대 초 셰일혁명을 기반으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에너지 최대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과 처지가 다른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의 에너지 의존을 ‘인질’로 영향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유럽에서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데서 나아가 에너지를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UC샌디에고대학의 공공정책학 교수인 데이비드 빅터는 “에너지 정책의 목표는 안보”라며 “안보는 자립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빅터 교수에 따르면 자립은 한 국가나 지역의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에너지 자립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해당 에너지원의 공급이 줄거나 차단될 경우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빅터 교수가 “에너지 안보란 오로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한 이유다.

에너지를 안보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수요를 맞추는 데서 더 나아가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스티브 시칼라 연구원은 “유럽이 천연가스를 가즈프롬에 아웃소싱한 것은 엄청나게 무책임한 일이었다”며 “유럽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방식의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즈프롬은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이다.

단기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선을 미국, 카타르로 넓히는 방법이 제시된다. 수입선을 다양화하는 게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키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빅토르 교수는 말했다.

에너지원 자체를 다양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2020년 기준 유럽은 에너지를 석유 관련 제품에서 32%, 천연가스에서 25%, 기타 화석연료로부터 11%, 원전에서는 13%, 재생에너지로는 18% 각각 얻었다.

석유와 화석연료 비중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럽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최소 55% 줄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강국인 영국은 최근 예기치 못한 ‘약한 바람’ 탓에 생산량이 급감해 전기료 대란을 겪었다.

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원자력협회에 따르면 독일은 2011년 3월까지 전체 전력의 약 25%를 원자력에서 얻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에너지 부족 사태를 경험하면서 에너지 포트폴리오에서 원전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다시 고민하고 있다. 체코, 프랑스, 폴란드, 영국도 새 원자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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