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가격은 과학이다?...명품업계 넘사벽 부추기는 '오픈런'

입력 2022-02-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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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백’ 아시나요?

한때 대한민국에서 3초마다 만날 수 있었다는 그 유명한 ‘루이비통 스피디30’입니다. 이 가방의 소유자였다면 한 번쯤은 거리에서 몸 둘 바를 몰랐던 경험이 있었을 겁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이지만 가격은 착했던 아이, 그래서 샀는데 너도나도 다 들고 다녀 민망했던 바로 그 아이. 그런데도 이런 대중적 인기 덕분에 루이비통을 먹여 살렸다는 그 아이.

무슨 얘기냐고요? 명품의 희소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 대중적이면 명품이라도 명품 축에 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명색이 명품이라 하면,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매장과 가격대, 디자인이어야 하는데, 요즘 명품은 참 쉽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처럼,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처럼,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처럼 명품을 사려 매장 앞에 장사진을 이룰 정도니까요.

이 때문일까요? 명품업계가 공격적인 가격 인상으로 계속 ‘넘사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요가 늘수록 자존심이 상하나 봅니다. 격이 떨어진다나 봐요. ‘명품’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업계의 가격 인상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현대백화점 루이비통 매장

◇루이비통, 너마저 또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전 세계에서 가격 인상을 단행한답니다. 생산 비용이 급증해서 어쩔 수 없다네요.

중국 루이비통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루이비통의 가죽 제품과 패션 액세서리, 향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제품에 따라 인상률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일부 블로거는 현재 가격이 각각 4만6500위안(약 7323달러), 1만2000위안(1890달러)인 ‘카푸신’과 ‘네버풀’ 등 일부 핸드백 가격이 중국에서 20%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명품 시장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펄스밥은 상승 폭이 저가품은 4%, 고가품은 평균 15~18% 수준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루이비통은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원자재 및 운송비 급등으로 가격을 올리는 올해 첫 번째 명품 업체가 됩니다. 루이비통은 작년 5월 특정 핸드백 가격을 최대 6%, 이달에는 추가로 3% 인상했습니다. LVMH가 거느린 또 다른 명품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오르의 경우 일부 시장에서는 가격이 최대 11% 인상됐습니다. 스몰 레이디 디올백은 4800달러에서 5400달러로 무려 17%나 올랐습니다.

앞서 샤넬은 지난해 일부 핸드백 가격을 세 차례 인상했는데,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은 현재 8200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이는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전보다 3000달러(60%) 가까이 오른 금액입니다. 케링그룹의 구찌는 최근 한국에서 디오니소스 백을 22%나 올렸습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는 불과 3개월 사이에 두 차례나 가격을 올려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원래 853달러인 지갑이 2021년 말에 986달러로 뛰었고, 지금은 1186달러로 인상됐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처럼 단기간에 지갑 가격이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주요 명품브랜드 가격 인상률. 출처 : 보그비즈니스

◇인플레 반영은 핑계다?

보통 명품 브랜드는 가격 인상을 통해 환율 변동과 인건비 상승분을 상쇄합니다. 그러나 2020년은 예외적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명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매우 공격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동안은 5~6% 인상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CBN데이터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샤넬의 핸드백 2.55개의 평균 연간 인상 폭은 올해 9.1%에 도달했습니다. 2020년 5월, 샤넬은 팬데믹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핸드백과 소형 가죽 제품의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5~17% 인상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명품 브랜드가 이처럼 공격적이진 않습니다. 영국 브랜드인 버버리의 경우는, 2020년에는 가격을 동결하고 올 1월에는 소폭 올리는 데 그쳤습니다. 케링의 보테가베네타도 가격을 올렸지만, 인상 폭은 크지 않았습니다. 고객 이탈을 막으면서 가격을 올릴 만큼 이들 브랜드의 파워가 강하지 않다는 의미죠.

그러나 명품 업계의 콧대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외식이나 여행할 기회가 줄면서 소비자들이 명품 소비에 돈을 쏟아부을 것이기 때문이죠. 명품 매출은 2019~2021년 사이에 4% 성장한 후 2021년 2830억 유로에서 2022년에는 3000억~3100억 유로로 증가할 것이라고 베인앤컴퍼니는 분석했습니다. 씨티그룹의 토머스 쇼베 명품 애널리스트는 원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에 따라 명품 가격은 2022년에도 계속 오를 것이며, 특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몽클레르는 두 자리 수의 인상률을 발표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오르텔리앤코의 마리오 오르텔리 이사는 “명품 브랜드들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도 마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르텔리는 “가격은 과학이다”라며 제품 가격을 올려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셀 VS 신품 시장 매출 추이 비교. 출처 : FASHIONLAW

◇리셀 플랫폼과의 경쟁

이런 붐을 타고 리셀 시장도 호황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팬데믹 기간에도 리셀 시장이 계속 성장해 작년에는 매출이 330억 유로에 달했다며 그동안은 이 시장을 무시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더는 신제품을 사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리셀 플랫폼과 손을 잡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레이첼코미나 마커스알메이다 같은 명품 브랜드들은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리셀 거래를 촉진하고 있으며, 조만간 더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도 따라 나설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대표적인 리셀 플랫폼은 더리얼리얼(The RealReal)입니다. 이 회사는 18개 소매점과 손잡고 플랫폼을 운영 중입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출범한 지 10년 만에 2200만 개의 명품을 팔았다고 합니다. 원래 작은 중고 명품매장이었지만,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온라인 매장을 열었고, 지금은 실제 명품 브랜드들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하퍼스바자는 2030년까지 리셀 시장이 패스트 패션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미 사랑받은 제품을 다시 판다는 특성 때문입니다.

▲샤넬 가격 인상을 앞두고 오픈런하려 매장 앞에 줄 선 사람들. (연합뉴스)
◇가격 인상 부추기는 오픈런

하지만, 이런 명품 리셀 붐이 ‘희소성’으로 먹고 사는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오픈 런’입니다. 리셀로 마진을 남기려 명품을 사는 사람들 때문에 최근 리셀 시장에서 명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리셀 플랫폼인 크림에서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 미디엄백 가격은 1139만 원으로, 1월 6일 1400만 원까지 치솟았으나 한 달 만에 18.64%나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리셀 시장은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명품을 사서 되팔면 짭짤한 프리미엄이 붙었고, 이를 노린 리셀러들이 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매장 앞에 진을 치는 이른바 ‘오픈 런’이란 진풍경이 연출됐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리셀러들의 공급물량이 급격히 늘면서 특정 제품에선 공급 초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넘쳐나는 리셀러들 때문에 명품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면서 명품 브랜드들도 자존심이 상한 것 같습니다. 명품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부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백화점 VIP 고객들 사이에서 샤넬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픈 런과 리셀족들 때문에 브랜드 격이 낮아졌다는 것이죠.

이는 명품 브랜드들로 하여금 가격을 계속 올리도록 하는 폐해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게 해야 명품으로서의 희소 가치가 올라갈 테니까요. 이들의 줄다리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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