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메리 크리스마스” 쓰면 안되나요

입력 2021-12-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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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 명절도 아닌 남의 나라 명절을 챙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한 번쯤 차가운 공기 속에 울려 퍼지는 따뜻한 캐롤 음악을 들으며 연인을 기다려본 기억이 있으니까요. 또 기다리던 연인을 만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수줍에 나누던 인사까지.

앗! 그런데 “메리 크리스마스”를 쓰면 안된다고 합니다. 무종교·탈종교적 문화가 대세인 요즘 이런 인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4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이브 미사를 집전하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하고 있다. 바티칸/AP뉴시스

EU, 종교적 차별 배제해야…“모든 EU 직원이 기독교인은 아니야”

최근 유럽연합(EU)은 32쪽 분량의 ‘포용적 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를 배포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성별과 성적 정체성, 인종, 문화, 종교 등에 기반해 특정인을 낙인찍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성 대명사(he)를 대표 대명사로 사용하지 말고,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 대신 친애하는 동료들(colleagues)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종교 부문에서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용어가 사용 금지 목록에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EU 측은 “모든 EU 직원이 기독교인은 아니며, 모두가 기독교 휴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크리스마스 대신 ‘홀리데이(holiday)’라는 용어를 쓸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문화권인 유럽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만한 권고였죠. 교황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교황청 서열 2위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별 금지는 옳은 일이라면서도 EU 집행위 가이드라인이 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 뿌리를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일 ‘크리스마스’, 논란도

그런데 이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논란이 일어난 걸까요? 먼저 왜 이런 논란이 발생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해 알아봐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기념일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들은 이 기념일을 지키죠.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령 제28394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통해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12월 25일이 예수가 탄생한 날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의 탄생일자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12월 25일이 탄생기념일 됐는지는 고대 로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고대인들은 절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고대 로마제국이 채택한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25일은 동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지는 1년 중 가장 해가 짧은 날입니다. 때문에 어둠이 짙은 날에 믿음, 소망,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자 구세주가 도래했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에 크리스마스도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짓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또 다른 설도 있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원래부터 12월25일을, 동교회에서는 1월6일을 각각 성탄절로 지켰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후대에 동·서교회가 모두 12월25일로 지키게 됐다는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크리스마스’ 단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어찌됐든 12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하는 기념일로, 기독교 중심의 서양 문화에서 중요한 날이 됐죠. 크리스마스라는 말 자체도 ‘크라이스트(christ)’와 ‘매스(mass)’의 합성어입니다.

문제는 이때문에 인권과 문화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책임이 중요한 현 사회에서 반감이 커졌다는 점이죠.

북미 지역에서는 1970년대부터 12월 말에서 1월 초의 기간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부르는 데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반발도 있습니다. 종교적 뿌리를 가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되레 다양성을 해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이런 입장차이로 ‘크리스마스’는 서양권 국가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공격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이 가장 크게 나타난 곳은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미국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내셔널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 참석해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으며 지지의사를 표했습니다.

반면, 오바마 전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내셔널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서 “오늘은 내가 일년 내내 굉장히 기다려온 날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과 세계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하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고, 최근 미국의 보수 법률단체 리버티카운슬(Liberty Counsel)은 성탄절을 ‘휴일’로 표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침묵하고 검열하는 소매업체 13곳의 명단인 ‘Naughty List’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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