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역 한 식당 앞.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 문 앞에 줄지어있다. “장사하나요”. “메뉴 전부되나요” 란 질문이 이어진다. 종업원은 “오늘까지 식사 할 수 있어요”란 대답과 함께 손님을 자리로 안내한다.
입구에 붙여놓은 ‘폐업 준비로 돈가스와 생선가스, 오므라이스, 해물볶음밥만 가능’이란 안내 문구가 쓸쓸하다. 서울 역사 안에 위치한 96년 된 노포, ‘서울역 그릴’의 모습이다.
1925년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이 식당은 한국전쟁, IMF 외환위기 등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 했다. 오픈 당시 요리사는 40명. 수용인원은 200명에 달했다. 정찬 가격이 비싼 탓(설렁탕의 21배)에 재력을 과시하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 이상은 소설 ‘날개’에서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고 서울역 그릴을 묘사했다.
그렇게 50년 간 명맥을 이어가던 식당은 철도청의 방만경영과 새로운 경쟁 식당들로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 1983년 프라자호텔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은 이후 수차례 사업자가 바뀌고 KTX 서울 역사 개장 등에 맞춰 장소도 옮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한 직원은 “코로나로 영업 타격이 심했다”면서 “식당이 있는 서울역사 4층은 모두 리모델링을 거쳐 고급 식당가로 변신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을 거쳐 최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히지만 ‘서울역 그릴’ 간판을 그대로 쓸지는 미지수다.
이날 식당을 찾은 한 손님은 “어릴 때 입학, 졸업 등 특별한 날마다 아버지 손잡고 찾던 곳인데, 문을 닫는다니 아쉽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