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타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즐거운…현대차 캐스퍼

입력 2021-09-29 11:30수정 2021-09-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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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의 한계 넘어선 디자인과 장비…전기차 전환 염두에 둔 실내도 특징

▲길이 3.6m와 너비 1.6m라는 경차의 악조건을 빼어난 디자인 기술로 극복했다. 작은 차체에 담긴 모든 게 커다란 덕에, 차체가 한결 커보이는 효과를 낸다. (사진제공=현대차)

캐스퍼는 현대자동차 입장에서 도전이자 모험이다. 애당초 경차는 많이 팔려도 곳간을 채울 수 없는 차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수출도 어렵다. 마른 수건까지 짜내야 할 판국에 차 가격의 10% 안팎을 물류비(운송 보험료가 대부분)로 지급해야 한다. 당연히 배를 타고 내린 뒤부터 가격 경쟁력은 '뚝' 떨어진다.

그런데도 경차의 당위성은 존재한다.

고가의 소비재를 구매하는 고객은 ‘브랜드 추종성’을 지닌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같은 브랜드를 고집한다.

현대차가 경형 SUV 캐스퍼를 내놓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경차부터 고객들을 현대차로 끌어들인 뒤, 이들에게 중형과 고급 대형차까지 판매하겠다는 전략이 숨어있다.

이는 ‘캐스퍼를 많이 팔아서 수익을 남기느냐’와는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 광주형 일자리 공장에 생산을 위탁하면서 원가를 낮췄고, 노사문제까지 털어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생산 원가를 낮춘 덕에 내수는 물론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출시장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캐스퍼는 젊은 감각을 다분히 담았다. 경형 SUV라는 수식 대신 '엔트리 SUV'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를 수 있는 컬러도 6가지나 된다. (사진제공=현대차)

◇SUV 특징 모조리 쓸어담은 디자인 특징

언론을 대상으로 한 시승회가 28일 경기도 용인에서 열렸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수십 대의 캐스퍼가 코끝을 나란히 맞추고 늘어서 있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경차를 밑그림으로 한 SUV는 모든 게 낯설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캐스퍼와 실제 눈앞에 선 캐스퍼 역시 전혀 다른 인상을 풍긴다.

‘길이 3.6m, 너비 1.6m’라는 경차의 숙명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나 작은 차가 아닙니다”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A필러(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기둥, 앞쪽부터 A, B, C필러다)를 검정으로 통일했다. 덕분에 앞쪽에서 바라볼 때 차체가 한결 커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

차 측면 보디는 두툼한 B필러를 타고 지붕까지 타고 올라간다. 대형 SUV 들이 자주 쓰는 디자인이다. 시각적으로 측면에 강인함을 더할 수 있다.

여기에 두툼한 C필러까지 더해 여느 SUV들이 추구하는 디자인 감각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작은 차 캐스퍼에 담긴 내용물은 모조리 대형이다. 커다란 전조등과 커다란 그릴, 경차로서 이례적인 17인치 대형 휠도 작은 차를 달리 보이게 만든다. 앞뒤 바퀴를 감싸 안은 대형 펜더 역시 이런 디자인에 톡톡히 제 몫을 다한다.

기아 레이가 껑충한 차체에 작은 타이어를 달았다면, 캐스퍼는 그보다 낮고 육중한 차체에 커다란 타이어를 장착한 셈이다. 디자인부터 절반은 성공이다.

▲인테리어는 전기차 전환을 염두에 뒀다. 앞서 등장한 아이오닉 5에서 봤던 디자인 터치가 차체 곳곳에 가득하다. (사진제공=현대차)

◇전기차 전환 염두에 둔 인테리어

묵직하게 열리는 도어를 제치면 제법 널찍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인테리어 만들기가 경지에 다다른 현대차는 20년 만에 재도전한 경차에서도 재주를 마음껏 뽐냈다.

기아 레이가 높은 천장 탓에 공허했다면, 캐스퍼는 공간 활용성을 키워 실내를 꽉 채웠다. 무엇보다 실내 전체가 전기차를 염두에 둔 모습이다. 아이오닉 5에서 보여줬던 구성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1열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에 벽(센터 콘솔)을 허물어낸 점도 독특하다. 운전석에서 동반석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실내가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낸다.

요즘 유행한다는 ‘차박’족을 겨냥해 시트를 앞으로 접을 수 있는 이른바 ‘폴딩’ 기능도 강조한다. 다만 “이렇게 작은 차에서 굳이 차박까지 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현대차는 캐스퍼의 폴딩 시트를 강조한다. 최근 유행하는 '차박족'을 겨냥한 전략이다. (사진제공=현대차)

▲간접분사방식(MPI)의 직렬 3기통 1.0리터 엔진은 최고출력 100마력을 낸다. 수치상으로 모자란 힘이지만 탁월한 변속기 세팅 덕에 초기의 경쾌함을 고속까지 끌어올린다. (사진제공=현대차)

◇최고출력 100마력 카파 엔진으로 경쾌하게 내달려

시동을 걸면 직렬 3기통 1.0ℓ '카파 엔진'이 깨어난다.

시승차는 과급기인 터보를 얹어 최고출력 100마력을 낸다. 20년 전 아토스 터보를 출시하면서 내놓은 그 엔진과 달라진 게 없다.

현대차는 2010년 이후 내연기관 엔진을 새로 개발한 적이 없다. 이전의 엔진을 보완하고 개량해 출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조만간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될 마당에 굳이 새 엔진을 만들 이유도 없어 보인다.

여기에 이 카파 엔진은 현대위아가 만든다. 변속기도 현대트랜시스가 생산한다. 조립까지 광주 GGM에서 담당하면서 원가를 낮추고 또 낮췄다.

▲경차 가운데 이례적으로 17인치 휠타이어를 갖춰 고속 안정성에서 모자람이 없다. (사진제공=현대차)

국도와 고속도로가 뒤섞인 약 50㎞ 시승코스에서 캐스퍼는 경쾌하게 내달렸다.

시속 100㎞까지 마음껏 가속해보면 1단은 꽤 짧고 2단을 길게 뽑아가며 튀어나간다. 100㎞ 직전에 3단에 맞물리면서 가속은 주춤한다.

20년 전 카파 터보 엔진과 달라진 게 없지만, 꾸준히 진화를 거듭한 덕에 어느 영역에서나 경차 특유의 더딤을 느낄 수 없다. 경쾌한 달리기는 엔진보다 변속기 효과가 더 크다.

무엇보다 고속 영역에 확연히 달라졌다. 추월 가속을 위해 110㎞를 넘어서는 영역에서도 제법 속도에 속도를 보태며 잘 달린다.

초기 가속 때 부담으로 다가온 17인치 타이어는 오히려 고속에서 반전을 끌어낸다. 안정감을 바탕으로 큰 바퀴를 성큼성큼 돌려가며 가속력을 보탰다.

운전대의 감각은 기아 레이보다 살짝 무겁고 모닝과 비슷하다. 다만 모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날카로움도 곳곳에서 드러냈다.

▲차 전체에 육각형 디자인을 심었다. 육각형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크다. (사진제공=현대차)

◇사전예약 신기록으로 '합리적 가격' 증명

우리는 ‘경차’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했었다. “경차니까”라는 변명 탓에 그들의 부족함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실내가 비좁아도, 차가 더디게 달려도 참아야 했다.

그러나 20년 만에 등장한 캐스퍼는 경차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났다.

차 크기와 엔진이 그대로임에도 내용물은 전혀 달랐다. 빈약하던 디자인 한계를 넘어섰고, 경차니까 포기해야 했던 다양한 안전ㆍ편의 장비를 갖췄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라는 건 언론이, 그리고 평론가가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경제적 관점이 기준일 뿐, 대중적인 잣대는 결코 아니다. 평가는 결국 시장이 내린다.

그런 관점에서 캐스퍼는 사전예약을 통해 1만8000대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시장에서는 캐스퍼의 가격을 두고 이미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경차는 경차다워야 한다. 고급 대형차는 당연히 옵션이 가득한 최고 등급을 골라야 맞지만, 경차는 가장 아랫급 기본형을 골라도 충분히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1300만 원대의 기본형을 고르면 그만이다.

작은 경차에 다양한 매력이 가득한 캐스퍼를 타면서 시승 내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차창 밖 시선도 마찬가지. 시승 내내 캐스퍼를 바라보는 미소들이 차 안에 쏟아져 들어온다.

▲가격이 비싸다는 논란은 사전예약 신기록(약 1만8000대)을 앞세워 단박에 잠재웠다. 그만큼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사진제공=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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