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딜레마...유럽, 멈춰버린 바람에 에너지 가격 사상 최고

입력 2021-09-14 15:12수정 2021-09-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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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바람 잠잠해지자 영국 전력 생산 타격
풍력, 영국 전체 발전원 4분의 1
영국·독일 등 곳곳서 요금 폭등
탄소배출권 가격도 사상 최고치

▲사진은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주 피터헤드 해안가에 해상 풍력발전기들이 세워져 있다. 피터헤드/신화뉴시스
최근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에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재생에너지의 원천인 ‘자연’이다. 북해에 불던 바람이 멈추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는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수급 불일치로 고공행진 중인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에 기름을 부었다. 글로벌 ‘탈탄소’ 추세에 재생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후에 좌우되는 특성 탓에 비용 부담을 키운다고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단했다.

유럽 각국이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에너지 가격은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수요가 빠르게 회복된 반면 공급이 이를 못 따라가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북해 지역에 불던 바람이 멈추면서 사태가 더 악화했다. 풍력발전단지 가동이 중단돼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천연가스, 석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 것이다.

데이터 정보업체 ICIS에 따르면 지난주 북해 풍속이 느려지면서 영국의 도매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h)당 285파운드(약 46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1999년 이후 최고치다.

독일과 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도 요금이 치솟았지만 풍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가격 상승세가 가장 가팔랐다. 영국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풍력 비중을 전체 전기 생산의 4분의 1까지 확대했다. 9월 전기요금은 전달보다 2배 이상 올랐고 작년 같은 시점 대비 7배나 뛰었다.

전력 사용이 대폭 증가하는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유럽 에너지 시장은 더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ICIS의 수석 에너지 이코노미스트인 스테판 콘스탄티노프는 “전력 비용 급등에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서 “수요가 훨씬 많은 겨울에도 전력 공급 차질이 지속되면 시스템 안정성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력 공급 부족으로 가격 부담이 커지자 영국은 천연가스, 석탄 화력발전소로 눈을 돌렸다. 영국 국영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는 폐쇄 예정이던 노팅햄셔의 웨스트버튼A 화력발전소 재가동을 요청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이마저도 3년 후에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영국 정부는 2024년까지 모든 화력 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다.

탄소 배출 탓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석탄 화력발전소가 재가동에 들어가면서 전력업체가 화석연료를 태우는 데 필요한 탄소배출권 가격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달 말 사상 최초로 톤당 60유로를 돌파했다. 이는 연초의 약 30유로에서 두 배 오른 것이다.

유럽 전력 시장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시장의 독특한 가격 책정 구조 때문이다. 전력 시장에서는 생산비가 가장 높은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 전력 생산비가 높은 화력발전소 가동은 전체 전력 시장의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전력·천연가스·석탄·탄소배출권 시장의 연쇄 가격 상승 도미노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경제에도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9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주요인 중 하나로 에너지 시장을 언급했다.

마크 디킨슨 인스파이어드PLC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가격 급등은 바람이 불지 않고 태양이 비추지 않는 순간을 대비해 전원 공급의 백업 장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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