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소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펜트하우스’, 불타올랐죠”

입력 2021-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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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연기생활을 오래 하면서 안주 아닌 안주를 했어요. 그래서 ‘펜트하우스’를 통해 ‘무언가를 해내야지’라는 생각이 크지 않았어요. 인물도 많이 등장하고, 이야기 줄기가 많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불타오르더라고요. 천서진으로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배우 김소연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천서진 캐릭터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시즌제로 이어진 이 드라마에서 김소연은 매 시즌 더 독해지고 강렬해진 악녀 연기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김소연이 연기한 천서진 역은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이자 청아재단 이사장 딸로 모든 걸 가진 ‘엄친아’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며,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고야 마는 비뚤어진 욕망을 분출하며 딸 하은별(최예빈)에게까지 대물림하는 어긋난 모성애를 보여줬다. 덕분에 김소연은 대한민국 악녀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김소연이 아닌 천서진을 상상할 수 없다’는 호평을 들었다.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9일 오후 화상으로 만난 김소연에게서 천서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진한 메이크업의 강렬한 얼굴의 천서진이 아닌, 짧게 자른 머리의 순하디순한 얼굴로 취재진과 마주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 천서진 캐릭터로 사랑받은 데에 대한 보답이라며 “언제 또 이렇게 사랑받아보겠냐”고 웃어 보였다.

“촬영을 끝낸 지 열흘 좀 안됐어요. 늘 마지막 촬영 쯤이 되면 ‘빨리 끝나면 쉬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런 생각이 안들었어요. ‘왜 기분이 이상하지?’, ‘아쉽지?’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도 마음이 이상해요. 아직까지 실감이 안나고 촬영장이 그리워요.”

김소연의 악역 연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여 년 전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에서 맡았던 허영미 역 이후 두 번째다. 20년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악역 천서진 연기는 더욱 노련해졌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모성애를 보여주는 등 완급 조절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정말 비뚤어진 모성애죠. 말도 안되는데 천서진으로서 ‘은별이를 위해 이게 무조건 맞다’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시즌3까지 오다 보니까 비슷한 대사,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소리를 매번 지르더라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비슷해 보이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어요.”

천서진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악녀 캐릭터로 꼽힌다. 단순 악녀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종종 짠한 모습이나 인간적인 면모 등이 묻어나 캐릭터에 입체성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모습은 탐욕적인 악녀의 모습 뿐만 아니라 천서진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서사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 캐릭터를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게 가장 큰 숙제였죠. ‘악행만 저지르지 말자’가 차별 포인트였어요.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원동력, 서사가 있었기 때문에 욕망만 가득한 악역과는 차별화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제공=SBS)

그렇다면 김소연이 생각하는 천서진은 어떤 인물일까.

“천서진은 어떤 캐릭터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리 어릴 때부터 가정사가 있을지언정 합리화될 순 없잖아요. 그걸 헤쳐나가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얘는 왜 이럴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연기할 땐 천서진을 미워하지 않았고, 종영 후부터 미워하자 생각했어요.(웃음)”

‘펜트하우스’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시즌3까지 긴 호흡으로 이어왔다. 여기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천서진 캐릭터까지 연기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김소연은 오히려 수월했다고 말했다.

“의외로 지친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간 해온 드라마 현장과는 달랐어요. 휴식 시간도 따로 주시고, 체력 안배가 가능했죠. 신세계였어요. 시즌이 끝나고는 시간이 좀 있어서 밥도 먹고, 쇼핑몰도 다니고 쉬었더니 오히려 에너지가 쌓여서 집중도 잘하게 되더라고요. 그전엔 배우병에 걸렸었는지, 촬영 중에 쉬면 누굴 만나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수월하게 지나갔어요.”

‘펜트하우스’에는 천서진 외에도 주단태, 오윤희, 심수련, 강마리, 이규진, 하윤철, 로건리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김소연은 만약 천서진이 아닌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주단태 역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주단태는 천서진과는 같지만, 또 다른 악역이에요. 엄청난 매력이 있잖아요. 주단태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서진은 아등바등하는, 나약한 악역이에요. 주단태는 포스있고, 악랄한 악역이잖아요.”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20년 전 ‘이브의 모든 것’ 허영미를 연기할 당시 김소연은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이 안돼 댓글도 없었지만, 당시 김소연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지만 이번 천서진 역할은 악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악역이었다. 이는 악역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또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대중들이 그 당시 때보다 캐릭터와 본체를 구분하는 성숙함이 커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것에 큰 수혜를 입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면 ‘가식이야’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만큼 캐릭터와 저를 동일시한 거죠. 지금은 유튜브 시대이기도 하고 캐릭터와의 분리를 확실하게 잘 해주시는 거 같아서 수혜를 입고 있어요.”

20년 전 허영미가 아직도 회자되는 만큼, 천서진 또한 김소연의 배우 인생에 있어 계속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앞으로 김소연이 연기할 때에도 천서진 캐릭터가 겹쳐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소연은 이 부담감 또한 자신이 해나가야 할 도전이라고 여겼다.

“얼마 전 마지막 촬영을 하는데 감독님께서 ‘앞으로 소연 씨를 다른 데에서 보면 천서진으로 보일 것 같아’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1년 반 동안 천서진이 저에게 깊게 자리 잡은 거죠. 부담감은 어느 순간 내려놨어요. 부담감이 있었다면 ‘펜트하우스’를 놓쳤겠죠.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도 캐릭터의 강렬함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 고민 때문에 이 작품을 안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없는 거잖아요. 다음 작품 역시도 일단 도전을 해보고, 매도 그때 가서 맞으려고요.”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시즌3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미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여자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은 김소연이다. 올 연말 SBS 연기대상에서 수상을 기대해볼 만도 하다.

“수상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제가 바라는 올해 연말은 다음 작품을 고민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최고의 선물일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천서진에서 벗어나는 게 숙제일 거예요. 기분 좋은 숙제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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