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선원들, 5개월 동안 코로나 무방비…10명 중 9명 '백신 난민'

입력 2021-08-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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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기준 백신 접종 완료율 11.5%
해운업 종사자, 해외 교류 과정 위험률 높아
해수부, 5개월 만에 대책 마련…뒤늦은 대응
홍문표 "하루빨리 백신 접종받을 수 있어야"

(제공=홍문표 의원실)

생애 마지막 항해를 나갔던 A 기관장(65)은 부산에서 출발해 5월 아랍에미리트에 도착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 신규 확진자가 30만 명에 달하던 인도 항에 잠시 정박했다. A 기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현지인과 접촉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A 기관장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A 기관장의 사망 이후 코로나19 사각지대인 선원들의 백신 접종 환경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이투데이 취재 결과 8월 중순 기준 10명 중 9명의 국제항해 종사자들이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종사자들이 청해부대 집단 감염 사례처럼 해외 정박 중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종사자들을 3월부터 ‘필수목적 출장자’로 인정했지만, 방역 당국의 뒤늦은 조처로 인해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30일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실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해운업 종사자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에 따르면 13일 기준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국적 선원 1만 2146명 중 백신을 접종받지 못한 인원은 8735명으로 나타났다. 접종자 중에선 1차 접종을 마친 인원이 2016명(16.6%), 2차 접종을 마친 인원이 1395명으로 접종 완료 비율은 11.5%에 그쳤다.

해운업 종사자는 업종 특성상 장기간 선상에 머물러 백신 접종을 받기가 어렵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3월부터 해운업 종사자가 백신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점을 알고 '필수목적 출장자'로 예방접종 강화 계획을 마련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접종 완료율은 11.5%에 그쳤다. 이는 2월 26일 첫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28.4%(29일 기준)의 접종 완료율을 보인 전국 지표와도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수치다.

해운업 종사자의 백신 접종이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을 받고 운항을 나서더라도 해외 교류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청해부대처럼 집단 감염 위험까지 생긴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다른 나라에 가서 그쪽 사람들이랑 이야기 안 하고 하역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하고 접촉 안 하고 배가 입항이나 출항을 할 수 없다"며 "청해부대가 비슷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감염이 됐을 때 대처도 미흡하다. 일단 외국으로 나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육로를 통한 이동은 사실상 어렵다. 한 교수는 "외국에서는 육상 이송도 안 된다"며 "(A 기관장은) 어제까지는 괜찮다고 하다가 가족한테 내가 지금 여기에서 너무 아프다고 하던 중 배에서 죽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와 방역 당국이 해운업 종사자를 사실상 ‘백신 난민’으로 내버려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 기관장 사례와 청해부대 집단 감염이 터져 선박이 백신 사각지대라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수부 관계자는 "배는 계속 움직이는 구조고 바다 위에서 짐을 계속 나르고 있기 때문에 선원들이 다 들어올 수 없는 구조"라며 "한 달에 최소 몇백 명 정도만 교대 선원들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접종 방식은 어떻게 보면 한두 달 걸리는 것"이라며 "방역 당국에 얘기해서 신청 절차를 줄이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행인 점은 해수부가 23일부터 4개 거점지역(부산, 인천, 목표, 여수)을 중심으로 바로 방문 접종이 가능한 맞춤형 예방접종을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얀센 백신 위주로 시행한다는 사실이다. 30대 미만에겐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맞추기로 했다. 다만 6월부터 얀센 접종이 가능했음에도 2개월 뒤에 대처가 나왔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해수부 관계자는 "(백신 접종은) 방역 당국에서 예방접종이나 물량에 대한 부분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서 정리되면 정부 발표가 되고 거기에 맞춰서 해수부가 이행한다"며 "해수부가 임의로 할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홍문표 의원은 "국익을 위해 망망대해를 거니는 해운 종사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해수부가 해운업계를 '백신 난민 지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며 "이는 지난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 당시 무방비 상태로 방관한 국방부와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홍보하고 자화자찬하는 ‘K-방역’의 실태가 사실은 백신 후진국이었다"며 "해수부는 질병관리청과 협의하여 하루빨리 해운업계 종사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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