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과 준대형 차별화 사라져, 그랜저 후속은 차체 키우고 대형화
많은 자동차 회사가 라인업(제품군)을 세 가지로 짠다.
엔트리급 소형, 많이 팔려서 회사를 배 불려줄 중형, 이미지 리더 역할을 맡은 대형 모델 등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C와 E, S-클래스를 둔다. BMW 역시 3→5→7시리즈로 차가 커진다.
이밖에 토요타 역시 코롤라→캠리→아발론으로 시장을 나눴고, 혼다는 시빅과 어코드, 레전드가 나온다. 대중차 또는 고급차 브랜드 모두 이런 ‘틀’ 안에서 새 차를 내놓는다.
때때로 모델 사이사이를 비집고 파생 모델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 잘 팔리는 효자 모델은 아니다. 쿠페와 컨버터블, 왜건 등 가지치기 모델이다.
다양한 제품군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언제나 중간 그레이드, 즉 ‘미드 사이즈’다.
한때 현대차의 세단 제품군은 △소형(엑센트)과 △준중형(아반떼) △중형(쏘나타) △준대형(그랜저) △대형(에쿠스) 등으로 세분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가운데 유일하게 경차(기아 모닝)부터 V8 대형 세단(2세대 에쿠스)까지 모두 만드는 곳이었다.
일본 토요타가 비슷한 제품군을 꾸렸지만, V8 세단(센추리)은 일본 내수에서만 판매한다. 2세대 에쿠스는 현대차 엠블럼을 달고 미국에 팔렸다.
현재는 엔트리급 엑센트가 단종됐다. 그랜저 윗급이었던 에쿠스는 제네시스로 옮겨갔다. 세단 제품군은 아반떼와 쏘나타, 그랜저로 줄었다.
이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링 모델은 그랜저다.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플래그십이 가장 많이 팔리는 사례는 없다.
6세대로 거듭난 그랜저는 이제 뒷자리 승객을 위한 ‘소퍼 드리븐’ 보다 직접 운전하는 ‘오너 드리븐’ 역할이 강하다.
이처럼 그랜저가 가장 많이 팔리다 보니 아랫급 중형 세단 쏘나타는 설 자리를 잃었다.
두 차종 모두 같은 플랫폼을 쓰고 같은 공장에서 나온다. 그랜저와 쏘나타 사이의 차별화가 적어, 윗급 그랜저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아진 셈이다.
결국, 쏘나타 판매는 그랜저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올해 1~2분기 모두 그랜저는 2만5000대 이상 판매됐다. 아반떼 역시 2만 대를 각각 넘겼다. 반면 쏘나타 판매는 1분기 9653대, 2분기 1만2967대에 그쳤다.
실제로 쏘나타 판매 하락 탓에 지난해 12월과 올 3월에 이 차를 생산하는 충남 아산공장은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마침내 현대차는 쏘나타의 상품성을 강화하는 대신, 그랜저의 업그레이드를 선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형세단 수요가 시장에 존재하는 만큼, 준대형차인 그랜저와 차별화에 나설 것”이라며 “쏘나타의 크기와 상품성을 준대형차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그랜저는 ‘플래그십’이라는 명성에 맞게 차 크기를 키우고 등급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