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해선 은행 계좌 발급이 필요한데, 거래소가 심사권을 쥐고 있는 은행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려는 조치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상장폐지 기준을 알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 가이드라인 초안을 만들어 배포한 은행연합회는 물론 거래소와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들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공개에는 난색을 보이는 상황이다.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은 지난 28일 은행연합회가 지난 4월 마련한 가상화폐 사업자 위험평가 방법론 가이드라인을 분석해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실제 작성된 문서로 의원실에 전달된 게 아니다. 각 은행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준을 마련하고 있기에 문서화 된 자료는 없다는 게 윤 의원실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은행연합회가 가이드라인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장 코인 개수가 많다거나, 신용도가 낮은 코인을 상장할수록 정량평가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도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은행연합회 측은 “은행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나 최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폐 기준이 은행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투자자 보호란 명분으로 가이드라인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반면 거래소 측은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 전부터 상장폐지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어 이러한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이 마련한 기준은 승인을 받아 운영하는 거래소로선 따라야 한다”면서도 “최근 부실한 코인 정리는 과거부터 진행돼왔던 것이지 최근 마련된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가이드라인 기준이 우회적으로 공개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은행이 자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지침에 불과해 통일된 규정은 없다”라면서도 “공개되지 않으니 시장에서 여러 해석이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의 가이드라인이 상폐의 기준이 아니었더라도 불투명함이 사실상 그런 해석을 놔두게 했다는 것이다.
다만 시중은행은 가이드라인이 외부에 공개될 경우 오히려 더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형 거래소를 중심으로 은행과 거래계좌 제휴를 하려고 하는데 가이드라인이 공개되면 승인을 요구하는 업체가 난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을 알려주면 은행 입장에선 시험지를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라며 “평가는 은행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오히려 기준이 더 모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