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혈투] 어제의 이웃가게가 오늘은 ‘적’이 된다

입력 2021-05-18 05:00수정 2021-05-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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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파는 커피전문점…치킨·베이커리 파는 편의점…편의점 쫓는 아이스크림 전문점

계속되는 불황은 골목 상권 내 자영업자들인 을(乙)끼리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서로 다른 업종으로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았던 어제의 이웃이 같은 품목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적으로 바뀌고 있다.

뚜레쥬르나 동네 빵집과 신경전을 벌이던 파리바게뜨 점주는 이제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에 이어 고급 빵을 내놓는 GS25나 CU도 견제해야 할 처지다. 교촌치킨과 BBQ 가맹점도 치킨 배달을 강화하는 5만 여개 편의점을 경쟁자로 맞이했다. 편의점주 역시 아이스크림 전문점의 공세를 경계하고 있다.

베이커리 가맹점 14개 문열고 이중 4개 살아남는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전체 외식업 가맹점의 개점률은 22.4%, 폐점률은 12.3%이며 이 가운데 제과ㆍ제빵 업종의 개점률은 13.6%인데 반해 폐점률은 9.8%로 조사됐다. 14명이 새로 개업하는 동안 4명만 살아남고 10명이 폐업한다는 얘기다. 개점률과 폐점률 차이는 3.8%p(포인트)에 불과해 치킨, 한식, 카페, 피자 등의 외식 표본 그룹 중 가장 적다.

베이커리 가맹점들의 현실은 점포당 매출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2018년 제과제빵 가맹점의 점포당 매출은 연 4억4600만 원에서 4억4000만 원으로 1.3% 주춤했다. '빵식'이 대세가 되면서 베이커리 시장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2015년 3조7319억 원이던 국내 베이커리 시장 규모(유로모니터)는 지난해 4조2812억 원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4조5374억 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도 ‘빵 및 떡류’의 가계당 월평균 소비 지출액은 2019년 2만2000원에서 지난해 2만5000원으로 10% 늘어났다.

(사진제공=GS리테일)

제빵 시장 커지는데 빵집은 찬바람...왜?

빵 먹는 인구가 느는데도 베이커리 가맹점은 왜 찬바람이 불까. 이들의 위기는 카페나 동네빵집을 비롯해 편의점까지 베이커리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자가 늘었다는 점이 지목된다.

커피전문점인 투썸플레이스는 론칭 당시부터 디저트 카페를 표방하며 케이크에 주력해 베이커리 업계의 강력한 라이벌로 자리잡았다. 투썸플레이스의 지난해 매출은 3655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3% 올랐는데 이중 베이커리 매출은 1460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9284억 원이었는데 이중 베이커리를 비롯한 푸드류 매출은 전체의 15~20% 수준으로 알려진다. 대략 3000억 원 전후에 달한다. 이는 제과·제빵 1위 업체인 SPC삼립의 작년 베이커리 사업 부문 매출(6451억 원)의 절반 수준이고, 베이커리 2위인 뚜레쥬르의 2019년 매출을 넘어선다.

편의점도 공세를 높이고 있다. GS리테일은 최근 편의점 GS25와 슈퍼마켓 GS더프레시에서 고급빵 ‘브레디크(BREADIQUE)’를 팔기 시작했고, 세븐일레븐도 프리미엄 베이커리 브랜드 ‘브레다움’(Brea;daum)을 출시했다. CU 역시 ‘샹달프’에 이어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롭게 내놓을 예정이다. 신세계푸드도 ‘제이릴라’ 베이커리로 시장에 가세한다.

(사진제공=GS리테일)

치킨·베이커리 공략하는 포식자 편의점 vs 편의점 쫓는 아이스크림 전문점

근거리 종합 소매 플랫폼을 표방하는 편의점의 골목 상권 침범은 베이커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수년 전부터 치킨을 팔아온 편의점들은 요기요, 카카오톡, 네이버 주문ㆍ배달에 치킨 수요가 늘면서 브랜드를 재정비해 공세 고삐를 죈다.

GS25가 배달 서비스를 내놓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간 전체 배달 매출 중 치킨은 10.1%를 차지했다. 미니스톱은 새 브랜드 ‘치킨퍼스트’를, GS25는 ‘치킨25’에 이어 새로운 브랜드 ‘쏜쌀치킨’을 내놨다. 세븐일레븐도 ‘치킨짱’을 대신해 ‘치킨의 정석’으로 명명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편의점은 커피숍도 정조준하고 있다. GS25는 1대당 1300만 원이 넘는 스위스 유라사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전체 점포의 80%인 1만2000여 점포에서 운영 중이고, CU는 전체 점포의 90%가 원두커피 브랜드인 ‘겟(GET)커피’를 취급하고 있다. ‘세븐카페’를 운영하는 세븐일레븐도 전체의 79%인 8300점에서 원두 커피를 팔고 있다. 이마트24도 원두커피 브랜드 ‘이프레소’를 운영 중이다.

동네상권 포식자로 떠오른 편의점도 견제받고 있다.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픽미픽미아이스’와 ‘응응스크르’ 등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최대 80%까지 빙과류를 싸게 팔며 편의점을 겨냥한다. 무인화로 관리비를 크게 줄이고, 과자와 주류까지 파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2019년 2000여 개에서 올해 1분기 4000여 개로 급팽창하고 있다.

'을'끼린 치열한 경쟁 내몰렸지만…‘갑’끼린 동업자?

불황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업종 간 경계를 허물면서 골목 상권은 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언뜻 업종 간 물러설 곳 없는 승부로 비치지만 각 회사가 생채기를 입었다면 을인 자영업자의 상처는 더욱 깊다. 가맹 본사들은 이종 업체로 제품 공급을 통해 살 길을 찾는 동안 가맹점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리 가맹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이웃 카페나 편의점과 신경전을 벌일 동안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삼립은 GS25에 '브레디크'를 공급하며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BBQ 역시 세븐일레븐에 치킨 원재료와 식기 등을 공급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빙과 회사는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전문점 모두에 제품을 납품한다.

골목상권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지만, 본사 역시 불황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편의점 관계자는 “마리째 파는 치킨 전문점에 비해 조각 치킨 위주로 판매해 직접 대결로 보기 어렵다”며 “가맹점의 매출 하락을 방어하려면 취급 품목을 계속 늘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이커리 관계자는 “편의점 빵과는 품질 차이가 있어 소비층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영역 침범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 정부가 가맹점의 영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존 영업지역 내의 대리점과 유사 가맹점 설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업태가 다른 분야끼리는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각 업체들이 품질 경쟁력을 높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취급 제품 확대는) 불황에 살기 위한 하나의 전략인 측면이 있다”면서 “앞으로도 서로의 시장을 뺏고 뺏기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는 “골목 상권 숨은 고수들의 판로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도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각 기업이 대응하면서 경계가 흐려지는 트렌드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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