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흙수저의 자수성가 가능할까? 영화 ‘힐빌리의 노래’

입력 2021-04-3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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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미국 예일대 법대 졸업을 앞둔 주인공 J.D.(가브리엘 바쏘 분). 장학금에 아르바이트만 3개를 하며 대형 로펌 취업을 위해 매일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앞에 둔 면접 식사 자리, 복잡하게 놓인 식기와 테이블 매너가 머리를 아프게 만들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그의 어머니(에이미 아담스 분)가 헤로인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다. 결국, 일생일대의 기회를 뒤로하고 J.D.는 고향 오하이오로 향한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2020)다.

힐빌리는 미국 중부 산악지대인 애팔래치아 지역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형적인 힐빌리라 하면, 억센 사투리를 구사하는 촌스러운 백인이 떠오른다. 이 지역은 과거 컨트리 음악을 탄생시킨 음악의 고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최근에는 트럼프를 대선으로 이끈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 벨트'로 유명하다.

▲예일대 법대 졸업을 앞둔 J.D.는 대형 로펌 인터뷰를 앞둔 중요한 순간에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듣고 급하게 고향 오하이오로 향한다. (네이버 영화)

영화는 J.D.의 불우했던 과거와 함께 쇠락한 오하이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J.D.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절과 달리, 힘차게 돌아가던 공장은 멈췄고, 가게는 문을 닫아 생기를 잃었다. 길거리 곳곳마다 약쟁이로 넘치며 집집마다 싸우는 고성방가만 들린다. 실제 자수성가한 사업가 J.D. 밴스가 쓴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영화는 러스트 벨트의 실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가난은 기본, 마약이 도처에 깔린 배경 속에서 J.D가 대학에 갈 수 있던 건 헌신적인 할머니(글렌 클로즈 분)의 노력 덕분이었다. 약물 중독에 가정 폭력을 일삼는 어머니 대신 할머니는 엇나가는 그를 붙잡고 공부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번번이 마약에 손을 대 가족의 앞길을 막으면서도, J.D.와 누나가 잘 클 수 있었던 건 할머니 덕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할리우드식 '자수성가' 클리셰다.

▲약물 중독에 가정 폭력을 일삼았던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J.D.를 불러들여 키운다. (네이버 영화)

하지만 실제로 J.D.처럼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계층간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이후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했다. 지난해 미국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코로나 이후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이 36% 증가할 때, 저소득층 3분의 1가량은 집세조차 제대로 못 냈다고 보도했다. 고소득층은 경제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는 침체가 더 심화하는 일명 'K자형 회복'이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경제적 격차뿐 아니라 계층 간 사회·문화적 자본에 주목하는데, 코로나 19 이후 사회·문화적 자본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루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고소득층 자녀의 경우, 학교나 학원 수업의 공백을 개인과외로 채우고 있지만 저소득층 자녀들은 말 그대로 방치되면서 양극화가 점점 심화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장성한 J.D.남매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헤로인에 손을 댄 어머니를 돌보느라 애쓴다. (네이버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끈기를 이야기한다. 가난과 배경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를 노래한다. 그 의지의 노래 끝에는 가족이 있다. J.D.는 영화의 마지막, "우리 가족은 완벽하지 않지만, 나를 만들고 그들은 갖지 못한 기회를 내게 주었다"며 "우리의 시작이 우릴 정의하더라도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가족과 노력을 노래한 영화의 결말은 미국 현지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즈의 명연기에도 '빈곤 포르노', '뻔한 가족주의적 결말'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시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복잡한 빈부 격차 문제를 매듭짓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노오력' 타령과 '가족' 서사로 마무리하는 게 무난했기 때문일 거다. 사회도 불평등을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마당에 영화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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